[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2016년 영화계는 재난영화부터 스릴러, 역사극, 퓨전 등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어 호응을 얻었고, 전체 관객수는 2억을 돌파했다. 비록 ‘천만 영화’는 ‘부산행’ 한 편으로 그쳤으나 일명 ‘중박’의 작품들이 다수 포진했다. 그 기세는 대형 작품들의 등장이 예고된 2017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기대작들 속 대다수의 주체가 ‘남성’에 집중되어있다는 점은 아쉽다. ‘여성’이 주체가 된 영화는 극소수다.
국내 대형 배급사들이 공개한 올해의 상업영화 라인업을 살펴보면, 화려함 그 자체다. 범죄액션부터 시대극, 스릴러, 실화 드라마, 판타지, 그리고 블록버스터까지 예고되며 관객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흥행이 보장된 남성 배우들이 상·하반기를 장악했다. 당장, 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범죄오락액션 ‘더 킹’은 조인성, 정우성, 류준열, 배성우가 극을 이끌며 액션 수사물 ‘공조’ 역시 현빈과 유해진이 투톱에 김주혁까지 가세한다.
‘공조’에 이어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황정민, 송중기, 소지섭)부터 ‘남한산성’(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7년의 밤’(류승룡, 장동건) 등 압도적 스케일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쇼박스에서 준비한 라인업은 ‘택시운전사’(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더 프리즌’(한석규, 김래원), ‘특별시민’(최민식, 곽도원, 심은경), 꾼(현빈, 유지태, 배성우)’, ‘살인자의 기억법’(설경구, 김남길, 설현)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도 이에 질세라 나섰다. 한국 영화 최초 2부작으로 진행되는 웹툰 원작 영화 ‘신과 함께’(차태현, 하정우, 주지훈)와 ‘보안관’(조진웅, 이성민, 김성균)을 내세우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NEW는 비록 ‘더 킹’으로 올해를 시작하지만 타 배급사에 비해 비교적 남녀 캐스팅이 조화를 이룬다. 개봉이 밀렸던 ‘루시드 드림’(고수, 설경구)과 ‘원라인’(임시완, 진구)을 포함해서 스릴러물 ‘장산범’(염정아, 박현권), ‘악녀’(김옥빈, 신하균) 등의 작품들을 준비 중이다.
물론, 여성 배우들이 스크린 속에서 완전히 부재한 것은 아니다. 주연에도 이름을 올리고 다수의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하지만, 극을 완전히 주도할 여성 캐릭터가 압도적으로 적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여성이 극의 한 축이 되어 독립적으로 이끌어가는 확실한 상업영화는 세 편으로 추릴 수 있다. ‘여교사’ ‘악녀’ ‘싱글라이더’가 그 주인공이다. 2017년의 첫 여성극 김하늘, 유인영 주연의 ‘여교사’는 제자인 이원근을 사이에 두고 대립을 펼치며 미묘한 심리를 그린 작품이다. 유인영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여성 중심 영화를 하고 싶어서 출연한 부분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강렬하고 매혹적인 태주 캐릭터를 연기했던 김옥빈은 정병길 감독의 ‘악녀’로 다시 한 번 여성의 카리스마를 선보일 예정이다.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남성 중심의 액션 장르와 달리 여성 액션 작품은 찾기 힘들다. ‘악녀’는 올해의 유일한, 여성이 주연인 액션극이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이 여성 배우의 저력이 기대된다면, 여성 감독 연출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한 편이다. 이병헌과 공효진 그리고 소희가 출연하는 신작 ‘싱글라이더’다. ‘싱글라이더’는 광고계에 몸담고 있던 이주영 감독이 스크린에 처음 선보이는 장편 작품으로, 감성을 담은 새로운 여성 신예 감독의 등장을 알린다.
2016년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돋보이며 균등하고 다양한 작품의 등장을 기대케 했다. ‘덕혜옹주’는 손예진의 힘으로 영화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이틀롤인 손예진은 처절한 연기를 내보이며 550만이라는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다. 함께 출연한 남자 주인공 박해일보다 라미란과의 ‘케미’가 더욱 인기를 끌기도 했다. 더불어, 영화 ‘아가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영화계에서 탄탄한 주연급인 하정우와 조진웅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닌, 두 여성 배우가 주체가 되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김민희, 김태리는 섬세한 감정 변화와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극 전체를 압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그 덕에, ‘청불’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신인상을 휩쓸며 여전히 북미에서도 호평과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 감독과 여성 배우가 힘을 합친 작품도 등장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공효진, 엄지원 주연 그리고 이언희 감독의 ‘미씽: 사라진 여자’는 기대만큼 흥행을 거둬들이진 못했으나 완성도 높은 연출과 짜임새는 여성 영화의 좋은 신호탄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손예진의 재발견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한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대중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작품으로, 호불호가 갈리며 많은 관객수를 모으지는 못했다. 그러나 독특하고 파격적인 연출 스타일을 선보이며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일영화상 등 다수의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이 외에도 ‘굿바이 싱글’ ‘죽여주는 여자’ ‘걷기왕’ 등 다양한 주제의식을 담은 여성 영화가 등장해 ‘남초 쏠림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듯 했다. 당시 영화에 출연했던 여러 여성 배우들은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독립적인 여성 작품에 대한 갈증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더불어, 현장에서 겪는 여성 영화인의 고충 등을 털어놓기도 하며 균등하게 조성되지 못하는 영화계 환경에 안타까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여성영화인모임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올해도 그렇지만, 사실 몇 년 전부터 남성 편향적인 것은 계속되어왔다. 안타깝고 답답하기도 하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모두 꼭 좋은 영화는 아니다. 의미 있고 좋은 영화를 여성 영화인들이 분명히 할 수 있지만, 흥행이 안 되면 제작 기회를 잃게 된다. 소위 말해서, 남성 중심 영화가 계속 나오다보니 그게 당연히 흥행하다보니까 제작도 이어지는 것이다. 저희도 언제나 여성 영화의 저변 확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강구 중이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그 방안 중 하나로 진행했던 것이 ‘여성영화인상’이다. 2016년에 17번째를 맞았는데, 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에 힘을 싣기 위함이었다. 작년 경우는 그나마 숨통이 트인 해라고 생각한다. 영화계 내에서 여성제작자 분들이 여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을 제작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많은 분들이 넓게 보시면 좋겠다. 단기간의 흥행보다 좋은 영화에 큰 관심을 주시면 좋겠고, 남성 영화인 분들도 작업하실 때 여성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2016년을 거치면서, 국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부수적인 역할 혹은 단순한 장치로만 이용되는 것에서 벗어나 당당히 작품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해를 맞은 지금, 이 현저한 차이가 계속 된다면 다양성이 ‘소재’ 범위에만 국한될지 모르는 아쉬움을 남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