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소기업 가전 공장을 방문했다. 생산 라인이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판매하는 제품 종류가 꽤 많은 회사인 터여서 의아했다.
공장 관계자는 “제품군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보니 미처 생산 라인까지는 증설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같은 라인에서 제품 종류만 바꿔 주문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제품 종류를 늘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별도의 제조 라인을 만들기 어려우니 이런 식으로밖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냉장고만 만들던 사람이 전자레인지, 공기청정기까지 한 곳에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국내 중소·중견 가전업계에서 이젠 `○○ 제품 전문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수기 전문 기업, 난로 전문 기업, 밥솥 전문 기업, 전기레인지 전문 기업은 사라졌다. 모두가 `종합가전 기업`으로의 도약을 표방한다. 트렌드 성격으로 인기를 끄는 제품에도 손을 뻗어 제품군을 늘려 나간다.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급변하는 고객 수요에 대응하는 게 당연시 됐다. 한 가지 제품군에 주력해서는 지속되는 경기난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유다.
중소기업 생산 라인을 보면서 제조 과정에서 제조자들의 헷갈림은 없을지 우려됐다. 숙련된 제조자가 투입된다고 해도 다른 제조 공정을 분별 있게 대처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업계에서도 백화점식 제품 나열이 제품의 품질 관리 소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안타깝게도 국내 중소·중견 가전업체에서 이 부문에 자금이나 인력을 투입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제품군을 늘려서 당장의 매출 상승을 견인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고객에게 만족할 만한 좋은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다품종을 다루는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품질 관리에 자금,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더 많은 제품을 팔려다가 제품 문제로 고객의 신뢰를 잃으면 결국 시장에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보다 `좋은 제품을 파는 회사`인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