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상처가 없는 게 아니다. 혹은 끊임없이 소리 낸다고 해서 상처가 치료되는 것 역시 아니다. 깊숙하게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저마다의 아픈 폐부를 두 여자가 기어코 끄집어내며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소녀 문영(김태리 분)은 언제나 캠코더를 들고 다닌다. 캠코더는 문영이 렌즈 속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개체다. 술에 취해 폭력과 욕설을 내뱉는 아빠와 함께 사는 문영이 걸어 잠근 건 자신의 방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도 함께였기에 세상을 올곧게 바라볼 수 없다. 그런 문영의 프레임 안에 한 사람만이 오롯이 담기기 시작한다. 열여덟 살인 문영과는 모든 게 대조적인 스물여덟의 희수(정현 분)다.
희수는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데에 거침이 없고,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희수 곁에 머무는 문영의 표정에는 조금씩, 천천히 미소가 드리운다. 여전히 말을 하지 않지만, 당연히 ‘느껴야 할’ 보편적인 감정을 끌어안으며 내일을 기대한다.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격렬한 고갯짓만 하던 문영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까지는 희수의 공이 크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동시에 회피하고 싶은 이중적 감정으로 인해 지독한 치기를 뿜어내는 문영에게 희수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해줘서가 아니다. 문영 스스로가 그것을 온전히 털어낼 수 있도록 조심스레 기다려주고 들어줬을 뿐이다. 희수 역시, 자신의 고민을 모두 쏟아내는 듯 싶지만 가장 결정적인 혼란인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는 극의 후반까지 꽁꽁 감춘다. 영화가 문영의 시점으로 흘러가기에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녀의 눈을 빌려서 보는 우리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상처의 근원도, 품고 있는 고민도 완전히 다르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에게 질문하고 소통함으로써 단단한 벽을 깨부순다.
문영과 희수 사이에는 퀴어적인 서사도 품어져 있지만 그게 극의 전체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사랑인지, 연민인지, 우정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가 없다.
어둠과 밝음이 함께 공존하는 ‘문영’은 잔잔한 텐션을 유지하지만 마냥 무겁게 볼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웃는 구간이 더 많을 정도로 재미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와 특별할 것 없는 순차적 구성은 평범하지만 오히려 담담해서 좋다. 동시에, 역동적인 핸드헬드 카메라 무빙을 이용해 캐릭터들의 감정을 집요하고, 섬세하게 잡아냈다. 어쩌면 평면적일 수도 있는 구조에, 입체감을 불어넣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영화 ‘아가씨’의 숙희로 화려하게 등장하기 이전에 맡았던 김태리의 첫 주연작이지만, 결코 갑자기 나타난 배우가 아님을 증명한다. 숙희보다 훨씬 앳되고 말간 얼굴에 장착한 눈빛은 그녀의 치기를 사랑스럽게 만든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기에, 생각은 읽을 수 없지만 눈빛만으로도 온전히 감정만큼은 느낄 수 있다. 특히, 모든 이질적인 감정이 폭발하는 마지막 지하철 시퀀스에서 김태리가 선보이는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다. 정현의 연기는 능청스럽기 그지없다. ‘문영’ 속 생기는 정현이 8할 정도 책임진다. 잘 가공된 연기가 아닌, 날 것 그 자체로 희수라는 캐릭터를 직면하게 한다.
사실 이번 정식 개봉으로 관객 앞에 다시 나서는 ‘문영’은 ‘확장판’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공개되었던 당시 극장판의 ‘문영’보다 많은 시퀀스가 추가된 이번 버전은 감정 서사가 조금 더 촘촘하게 세워졌다. 결국, 스스로 프레임을 찢고 나온 문영의 2막 인생을 상상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문영’은 1월 12일에 관객들을 찾아온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예은 기자 9009055@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