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방송] 시국을 관통한, 유병재의 ‘의뭉스러움’

사진=방송 캡처
사진=방송 캡처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 어떤 사명감을 갖고 하는 게 아니라 직업이 이거니 웃기려고 한 건데 너무 과찬해주셔서 좀 부담스러워요. ‘관심병’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유병재는 지난 9일 오후 방송된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 최근 시국 관련 ‘사이다’ 풍자를 했던 이유에 대해 이와 같이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건, ‘관심병’의 연장선에서 나온 거짓말이건 상관없다. 그는 정치를 제대로 풍자할 줄 아는, 유일한 방송인이다.



유병재는 Mnet 예능프로그램 ‘유세윤의 아트비디오’를 통해 처음으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이 프로그램은 페이크 다큐를 표방했다. 유병재는 유세윤이 개업한 영상 제작회사의 조연출로서 출연했다. 유명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을 뿐더러, 짧은 방영기간 때문에 당시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당시 유병재는 유세윤과 함께 수많은 스타들과 다양한 영상을 찍었다. 단순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우스꽝스러운 내용이었고 웃음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불편해지는 부분들도 존재했다. 뮤직비디오를 찍으며 투덜거리는 걸그룹에게 필요 이상의 과한 칭찬을 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간 순간부터 을이 된 김보성에게는 반말과 무리한 요구를 했다. 마치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을 꼬집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사진=유병재 SNS
사진=유병재 SNS

유병재가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tvN ‘SNL 코리아-극한직업’도 비슷한 맥락이다. 매니저가 된 그는 연예인들의 갑질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엉뚱한 언행으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고급 생수만 먹는다”는 손담비에게 수돗물을 건네고, 압존법을 지적하는 이휘재에게 욕설을 추가한 압존법으로 맞섰다. 풍자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던 그의 활약은 ‘SNL’을 만나 제대로 빛을 발한 셈이다.

SNS를 들여다보면 그의 풍자는 더욱 적나라하다.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라는 사회적인 이야기는 물론,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택시기사 감축’ 주장에 대해서는 “세배를 10시간 했는데 최저임금이 안 나온다. 조카를 감축해달라”고 일침을 날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YG엔터테인먼트 구내식당에 앉아 있는 사진과 함께 “밥맛은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오늘의 핵심 메뉴는 오늘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밥상을 차리고 나가면…”이라며 박 대통령의 말투를 따라했다.

신랄한 풍자는 복잡한 시국과 함께 JTBC ‘말하는 대로’로 옮겨졌다. 유병재는 조카에게 받아쓰기 교육을 시켰다며 “빨갱이” “쿠데타” “개헌” “계엄령”를 입에 올렸다. 직접적으로 현 시국과 정부를 꼬집지 않았다. 그저 민감한 단어들만 나열했을 뿐이다. 그리고 “‘동생이 언니한테 일해라 절해라 하면 안 된다’ 이건 맞다고 알려줬다. 일도 하고 절도 했으니까”라는 국정농단을 연상케 하는 발언으로 마무리했다.

사진=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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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는 타고난 거짓말쟁이다. 방송에서의 그는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 가장 하고 싶었던 날선 말은 숨기고, 중요한 순간이 되면 표정을 바꿔 신랄한 이야기를 뱉어낸다. 1차원 적인 패러디를 하고 있는 ‘개그콘서트-대통형’, 외압설에 꾸준히 휘말리고 있는 ‘SNL코리아’가 잃어버린 시사·정치 풍자를, 공채 개그맨도 아닌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가 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말하는 대로’의 정효민 PD는 유병재 섭외와 관련해 “처음부터 시국 버스킹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유병재는 글을 직접 쓰는 작가 겸 방송인이다. 애매한 선상이기도 하다. 직접 대본을 쓰는 프로그램이니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미팅을 했다. ‘스탠딩 코미디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우리도 권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준비해온 내용을 보니 좋았다. 미국에서 하는 스탠딩 코미디는 풍자가 많이 담겨다. 우리나라는 풍자가 많았지만 사라지는 분위기였다. 유병재가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풍자를 해줬다. 종종 시간될 때마다 만나자고 했고, 최근에 재출연했다. 또 기회가 되면 함께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유지훈 기자 tissue@enter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