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민초들 "트럼프 반대" 비밀모임 가져···행동 나서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14일 팀 쿡 애플 CEO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반 트럼프 비밀모임인 기술연대 참석자들은 트럼프와의 간담회에 IT기업 지도자들이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한 것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실리콘밸리의 상징과 같은 자유로운 복장을 포기한 것 자체가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증거라고 이들은 해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14일 팀 쿡 애플 CEO등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반 트럼프 비밀모임인 기술연대 참석자들은 트럼프와의 간담회에 IT기업 지도자들이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한 것에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실리콘밸리의 상징과 같은 자유로운 복장을 포기한 것 자체가 트럼프를 두려워하는 증거라고 이들은 해석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스트리트의 한 건물. 악명 높은 범죄자를 수감하던 앨커트래즈 섬과 가까운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후드티, 청바지 등 실리콘밸리 특유 자유로운 복장 일색이었다.

모임을 주최한 마치에이 세그로프스키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금은 정말로 위험한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 휩쓸릴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험합니다.”

공동 주최자 헤더 골드가 거들었다. “조그만 힘도 이들에게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외신 리코드(Recode)가 전한 실리콘밸리 트럼프 반대 모임 분위기다.

`테크 솔리대러티(TechSolidarity·기술연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모임은 이날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초청자만 참석할 수 있는 일종의 비밀모임이었다. 참석자 150여명은 20~30대 정보기술(IT) 엔지니어가 대부분이었고 일부 노동활동가도 합류했다. 참석자 4분의 1가량이 구글, 페이스북 등 IT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파악됐다. 평소 정치에 둔감한 실리콘밸리에서 이례적인 일이라고 외신은 평가했다.

얌전한 IT노동자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반이민자 공약이다. 트럼프는 △미국 내 모든 무슬림 등록 △불법이민자 추방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등 외국인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공약을 내놨거나, 과거에 유사한 발언을 했다. 한국, 중국, 인도, 중동 등 아시아권 우수 IT인력이 상당수 포진한 실리콘밸리에서 반트럼프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다.

트럼프 당선과 맞물려 최근에는 해외 이민자를 억압하는 `미국 직업 보호와 성장 법안`이 하원에 상정되기도 했다. 법안은 IT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전문직 취업비자(H-1B) 취득 기준을 `연봉 10만달러(1억2000만원)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현재 6만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그만큼 해외 이민자가 미국 IT기업에 취업하는게 힘들어진다. 또 석사 학위가 있으면 우선권을 주는 제도도 폐지될 예정이다. 트럼프는 당선 전인 지난해 3월부터 H-1B 비자를 `값싼 노동 프로그램`이라며 비난하고 규제 강화를 공언해왔다.

이 같은 이유로 `실리콘밸리 민초`들이 트럼프 반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12월 13일에는 `네버어게인 서약` 행사가 열려 2800여 IT전문가들이 서명했다. 이 서약은 트럼프 당선자가 내세운 무슬림 등록, 불법이민자 추방 등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테크 솔리대러티 주최자 세그로프스키는 “지난 달 트럼프 당선자와 팀 쿡, 제프 베저스, 래리 페이지, 셰릴 샌드버그 등 주요 IT기업 지도자가 만났는데 이들은 평소라면 넥타이와 정장을 결코 착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것은 IT기업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이런 리더십에 의지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 참석자들은 파업 등 서명운동 이후 대응방침을 논의했다.

테크 솔리대러티에 참석한 한 여성은 “나는 H-1B 비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모임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