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스플레이업계가 침체에 빠진 것은 액정표시장치(LCD) TV 등 전방산업의 부진도 한몫했다. 패널을 공급받아 LCD TV, 노트북PC, 스마트폰 등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일본 세트업체는 한국과 중국 제품의 공세로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패널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패널업체가 동반 부진에 빠졌다.
LCD 패널의 핵심 수요처인 LCD TV는 1988년 일본 샤프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주도권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업체에 내줬다. 2008년 44%를 차지하던 일본 업체의 세계 TV시장 점유율(매출 기준)은 2011년 33%대까지 추락하며 한국(38%)에 추월을 허용했다. 30년 동안 지켜 온 세계 TV 시장 선두 자리를 한국에 내준 것이다. 2005년까지 세계 1위이던 소니는 2006년 삼성전자에 선두를 내준 뒤 2009년에는 LG전자에 추월당하며 TV 시장 3위 업체로 추락했다.
세계 시장 1위이던 일본의 TV 산업이 몰락한 원인은 여러 요인이 있다.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고질화된 고비용 구조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또 TV의 핵심인 패널의 안정 수급에 실패했다. 엔고로 인한 가격경쟁력 상실도 원인이 됐다.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뒤늦은 대응으로 경쟁 주도권을 뺏긴 것이다. 일본 TV는 기존의 브라운관 기술 개선에 집착하다가 TV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상실했다. 소니는 1968년 트리니트론 컬러 TV를 출시, 8년 만에 세계 시장에서 1000만대를 판매하며 세계 TV 시장을 석권했다. 1997년에는 평면브라운관 TV `WEGA(베가)`를 출시, 독보하는 브라운관(CRT) 기술 지위를 확립했다. 2000년 이후 LCD 및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가 등장했지만 소니 경영진은 CRT 대비 조악한 화질을 이유로 `LCD와 PDP는 일시 유행`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소니는 CRT 이후 차세대 디지털 TV 기술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LCD TV 사업에 대해서는 패널을 외부 조달하는 정도로 투자를 제한했다.
파나소닉은 대형 TV 화면을 선호하는 소비자 수요에 대처하지 못한 채 32인치 패널에 주력하다가 TV 대형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3년 이후 급격한 채산성 악화에 시달렸다. 결국 이런 패착이 일본 TV 몰락을 초래했다. 이 밖에 내수 중심 사업 전개로 글로벌 시장 선점 및 산업 생태계 형성에 실패했다.
반면에 한국업체는 PDP→LCD→LED→OLED까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평생 가전`으로 불리던 TV의 혁신 주기를 10년에서 2~3년으로 크게 단축시키는 등 진화를 지속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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