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고비 때마다 반전과 극복의 드라마를 써 낸 주인공은 국민이었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여러 국면에서 국민들은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했다.
다음 주인공은 우리 현대사의 압축 성장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세계 수출 7위 달성, 주요 품목 세계 1위 위업 등 기적을 일궈 낸 기업이다. 우리 경제에 기업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나라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기업이 막다른 골목에 섰다. 삼성그룹 최고경영자(CEO)가 특검에 소환됐다. 다른 대기업 총수도 줄줄이 소환될 처지에 놓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잠재된 범죄자로 낙인 찍힌 채 몸을 움츠리고 있다.
법에 의한 결론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민심이다.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여론은 연루된 기업을 같은 범죄인 일당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업을 아예 정부 기반을 뒤흔든 `사욕과 일탈의 집단`으로 동급화하는 인식이 아닐 수 없다.
최악의 경기 위축과 대외 불확실성, 주변 국가들의 긴장 심화 등 새해부터 우리 기업 앞에 쏟아지는 것은 온통 적신호뿐이다. 이번 사태를 겪고 나서도 한동안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다. 추락한 이미지와 기업 전통을 살리는 데에만 짧게는 1~2년, 아예 치유하지 못할 곳도 생겨날 것이다. 그만큼 기업은 분위기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이런 `참화`를 겪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곧바로 뛸 수 있는 기업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인식이다. 기업이 없으면 우리가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느냐의 문제다. 기업이란 원동력 없이 국가 성장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가의 이야기다.
지금의 사태로 인한 원인 규명과 책임은 분명히 지워야 한다. 다만 그 과정이 기업을 `상대하기 쉽다는 이유`로 단죄만 하는 방향으로 흘러선 안 된다. 이번 일을 겪은 뒤 기업이 다시 뛸 수 있는 최소한의 자존심과 의지까지 꺾어선 안 된다. 특검이 수사 과정에 견지해야 할 아주 중요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