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서명한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등 미국 정보기술(IT)업체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일제히 우려와 반대를 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IT업계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이 간담회를 갖는 등 잠시나마 밀월 관계를 즐기던 양 측이 이민 정책을 계기로 갈등을 노출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IT업계 주요 경영자들은 트럼프가 27일 서명한 이민 금지 행정 명령을 일제히 비난했다. 앞서 트럼프는 27일 이라크, 이란,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등 7개국 국민에 대해 90일간 미국 비자 발급과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그동안 외국 고급 인력에 크게 의존해온 미국 IT업체들은 일제히 우려와 비난을 쏟아냈다. 인도에서 출생한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사티야 나델라(Satya Nadella)는 행정명령이 이뤄진 하루 뒤인 28일 온라인 포스트에 “이민자로서, 또 CEO로서 나는 미국 이민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트럼프 행정 명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MS는 행정명령과 관련 있는 직원 76명과 접촉했으며, 계속해 사안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Tim Cook)도 비난에 동참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최근 이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과 접촉, 이민 금지의 부정적인 면을 정부에 피력했다”면서 “회사는 물론 미국 미래를 위해 이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글도 재빨리 반응했다.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는 27일 직원에 이메일을 보내 “우리 회사에서 최소 187명이 이번 행정 명령과 관련돼 있다. 한 명은 급히 해외에서 미국으로 들어왔다”면서 “해외에 있는 관련자들은 글로벌 보안팀과 상의하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조치가 “당혹스럽다”면서 “유능한 인재를 해외에서 데려오는 것이 방해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Mark Juckerberg)도 27일 페이지에 “우려스럽다”는 글을 올리며 “우리는 이 나라를 안전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위협을 주는 사람들한테만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마존 부사장이자 인력 부서 총괄임원 베스 갈레티도 28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행정명령에 해당하는 나라에서 온 미국에 있는 직원은 미국 밖 여행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면서 “이미 미국 밖에서 여행을 하는 사람은 비상계획에 따라 회사와 접촉하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CEO 리드 해스팅(Reed Hastings)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트럼프 행정명령은 넷플릭스 직원에 상처를 주었다”면서 “모두에 고통을 주는 반미국적 처사”라고 비난했다. 우버 CEO 트래비스 칼라닉(Travis Kalanick) 역시 우려를 표명하며 “이번주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시킨 비즈니스 자문위원회에 처음 참석하는데 이때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 하이테크 업체들은 외국에서 온 숙련된 엔지니어에 많이 의존해 왔다. 초당적 단체로 이민 정책 연구에 주력해온 내셔널 파운데이션 포 어메리칸 폴리시(National Foundation for American Policy)에 따르면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가진 미국 스타트업 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 설립한 회사다. 또 이 단체에 따르면 미국 대학 전자전공 졸업생 중 77%, 컴퓨터 전공자 중 71%가 국적이 미국이 아니다.
호워드대 정치과 교수 론 하이라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미국은 H-1B로 알려진 외국 숙련기술자용 비자를 27만4000개 발급했는데, 이 중 약 0.5%인 1220개를 이번 7개 비자 금지국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받았다. MS와 구글 직원이 가장 많이 받았는데 각각 31명과 15명에 달했다.
트럼프는 이민금지 행정명령이 “급진적 이슬람 테러에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했지만 노벨상 수상자 12명을 포함해 미국 학자 2000여명이 트럼프의 `반 난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는 등 반대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