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자정부가 올해 도입 50년을 맞는다. 한국 전자정부는 1967년 인구 통계용 컴퓨터 설치로 첫걸음을 내디딘 후 반세기 동안 발전을 거듭했다. 어느덧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 전자정부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제2의 도약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50년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50년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민국 전자정부는 지난해 유엔이 실시한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영국, 호주에 이어 3위에 올랐다. 193개 회원국 가운데 상위 2%에 포함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앞서 세 차례 평가(2010, 2012, 2014년)에서는 3회 연속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서비스, 정보통신 인프라, 인력 자본 데이터를 계량화해 비교하는 유엔 전자정부 평가 특성상 한 나라가 3회 연속 1위에 오른 것만으로도 놀라운 성과다. 문제는 이 같은 지표가 오히려 한국 전자정부 발전에 불필요한 색안경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우리 전자정부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표 성공 사례로 부각되자 알게 모르게 전자정부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낮아졌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를 이뤘는데 또 다른 투자가 필요한가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 전문가는 “예산 당국은 전자정부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을 갖췄으니 적절히 유지하면 된다는 안일한 시각으로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정부에 대한 낮은 관심은 정부 거버넌스 체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 뚜렷한 국가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없다. 전자정부를 관장하는 조직은 박근혜 정부 들어 `실`에서 `국` 단위(행정자치부 전자정부국)로 축소됐다.
행자부는 궁여지책으로 전자정부국을 다른 실 아래에 편제하지 않고 독립 국으로 운영한다. 전자정부의 중요성을 반영한 조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크게 다를 바 없다.
조직과 관심이 낮아지니 새로운 추진 동력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다른 분야는 `위원회`가 넘쳐나 문제라지만 전자정부는 법에 근거를 둔 위원회가 없다. 주요 정책과 사업을 심의·조정할 협의체가 없다. 전자정부 50년 역사에 3회 연속 세계 1위 전자정부국이라는 대외 위상과 어울리지 않는다.
행자부는 지난해에야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민·관 합동 전자정부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홍윤식 행자부 장관, 안문석 전자정부 민관협력포럼 의장)를 구성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기획재정부 두 주요 부처 차관을 위원으로 위촉, 범 부처 협의 체계를 갖췄다.
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아직 관련 법에 설치 근거가 없다. 지난해 위원회 설치 근거를 담은 전자정부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대기 상태다. 같은 개정안에 담긴 전자정부 예산 편성 때 행자부의 사전 검토를 공식화하고 예산 당국에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도 진척이 없다.
미래부가 관장하는 국가정보화법과 행자부의 전자정부법 간 조율도 요구된다. 전자정부가 행정에 국한된다고 보기엔 최근 공공 서비스 영역이 넓다. 국민 행복에 초점을 맞춘 전자정부와 국가정보화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전자정부법의 확장이 필요하다. 학계 전문가는 “2개 소관 부처가 법으로 나눠져 유리한 정책은 서로 차지하려 경쟁하고 모호한 부분은 미루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정의를 분명하게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자부 내부로는 `정부3.0`과 전자정부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정부 혁신을 기치로 내건 정부3.0은 박근혜 정부 대표 정책의 하나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빛이 바랬지만 정부3.0이 표방하는 정부 혁신 가치는 정권이나 용어와 관계없이 이어 가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상 정부3.0을 구현하는 것은 전자정부다. 정부3.0을 대표하는 공공서비스와 업무 협업 체계는 모두 전자정부가 있기에 가능하다. 전자정부가 정부 혁신을 뒷받침하고 국민 편익을 높이는 데 중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미래 50년 전자정부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자정부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안문석 전자정부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2일 “전자정부를 도로 같은 인프라로 보면 재투자 간격이 길어진다”면서 “새 기술이 나오면 새로운 국민 수요가 나타나고, 이에 맞춰 끊임없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위원장은 “전자정부는 신기술을 어떻게 행정에 적용할지를 놓고 지속 고민해야 한다”면서 “기존 시스템에 의존하고 투자를 미루면 전자정부 경쟁력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10위, 20위권으로 떨어진 뒤에야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뒤늦다는 뜻이다.
이호준 SW/콘텐츠 전문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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