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아닌 것`들만 이룬다는 목표가 있다.
`다이어트`다. 여성에게 다이어트는 인간이길 포기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다. 혀끝에서 녹아나는 치즈케이크, 지글지글 삼겹살, 시원한 바지락칼국수. `악마의 유혹`을 극복해야 가능하다. 올해도 플래너에 `다이어트`를 목표로 적는다. 그러나 빵 속에서 흘러내리는 생크림의 유혹을 버틸 재간은 없다. `작심삼일`을 넘기길 바랄 뿐이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 <5>언어 다이어트](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9797_20170205163145_291_0001.jpg)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말이 넘쳐 난다. 광화문 촛불과 태극기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말이 쏟아졌다. 네 편이든 내 편이든 상관없다. 거칠고 무례하고 극성스럽다. 익명 속에서 평소에 하지 못할 말을 배설한다.
SNS에서 친구가 된 절반은 `지인`, 절반은 그냥 `아는 사람`이다. 사이버 상에서 친구를 요청해 올 경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아는 사람만 가려서 `친구` 하자니 진부한 사람 같아 몇몇은 그냥 프로필 정도 확인하고 `친구맺기`를 한다.
SNS를 시작한 후 요즘처럼 후회스런 적이 없다. 잘 모르던 사람을 친구로 맺어 놓고 보니 그들의 일상을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포스팅에는 그들의 성격과 취향, 지식수준, 삶의 패턴이 나타난다. 어떤 일을 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심지어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까지도 엿보게 된다. 어제 저녁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주말에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알게 된다. 부모님 상가 소식도 올라온다. 정치 관점이나 성향, 인생의 목표, 철학, 가치관, 문화 수준이 드러난다. 상대방을 알아 간다는 기쁨도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엿보게 되면서 매우 불편해진다.
`불편`한 그 사람은 교수였다. 지난해 말 촛불 행진이 시작됐을 때 자신의 포스팅 글에 “내가 그 X을 뽑지 않았으니 내 대통령도 아니고 그 X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그를 소신 있고 개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나는 문장마다 욕설을 장신구처럼 달아 놓은 그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교수로 인정하고 싶지도, 사이버 상의 친구로도 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친구삭제` 처리를 했다.
논리와 비판이 정당하고 합리타당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표현은 SNS에서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대학교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또 다른 지배 권력인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와 메시지를 표현하는 의사소통 도구다. 점 하나, 느낌표 하나로 상대방의 감성이 읽혀지고 지식수준이 가늠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스러운 욕을 토해 내고, 저급한 표현으로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태도는 충분히 비인격적이다.
욕은 감정을 배출하는 수단이다. 상스러울수록 해소 효과도 크다. 자극이 강할수록 쾌감도 크다. 그러나 욕설은 저속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언어 습관을 고치기는 어렵다. 살 빼는 일만큼이나 절제된 언어 표현은 고충이다. 욕설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내뱉는 사람들에겐 언어 다이어트가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결코 작심삼일로 끝나서도 안 될 일이다.
말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다. 말을 절제하고 줄이는 일, 지금부터 필요하다. 그래야 내 주변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