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열기가 뜨겁다. 지난 정부에선 녹색성장, 현 정부에서는 창조경제가 거의 모든 보고서·세미나·정책의 앞머리를 장식했다. 지난해부터는 4차 산업혁명이 대신하고 있다. 녹색성장과 창조경제가 국산품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수입품이다.
4차 산업혁명의 열기가 올해 들어 더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는 창조경제에 대한 기대가 일찌감치 식은 데다 미국발 무역 마찰 시대의 도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우리 경제의 출구 전략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위스 다보스의 4차 산업혁명을 베끼거나 앵무새처럼 되뇌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싱크탱크들은 더 설득력 있는 인문학 보고서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생산 현장은 4차 산업혁명을 더 엄격해진 공장 자동화로만 보고 건성으로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는 예산 투입형 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감력이 떨어진다.
한국공학한림원의 이현순 두산 부회장,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최영락 연구위원과 같은 과학기술산업 정책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제조업이 빠진 4차 산업혁명은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없다”면서 “현재의 주력 산업과 4차 산업혁명의 연결고리를 찾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에 착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중국을 제외하곤 세계에서 가장 높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와 2008년에 터진 국제 금융위기 때 나라 경제를 건진 것은 수출이었고, 그 중심에는 제조업이 있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백두대간인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제조업이 GDP의 30%를 차지하곤 있지만 세계 제조업 GDP 셰어는 2%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독일은 GDP 25%, 세계 제조업 GDP 7%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GDP의 12%대, 17%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최근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치고 있는 배경이다.
결국 우리 제조업의 승부처는 원천 기술을 튼실하게 키워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세계 GDP 셰어를 늘리는 데 있다. 일자리 창출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곽재원의 Now & Future]`권오준ㆍ황창규 2.0`과 4차 산업혁명](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7/02/05/article_05101811921957.jpg)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빅뱅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정책과 전략이 자칫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3D 프린팅 등 정보통신기술(ICT) 자체에 매몰될 수 있다. 그 기술들은 대개 수입품이기에 기술 종속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자원 왜곡도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술 정책과 산업 정책, 나아가 기업 전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한국 경제는 1960년대부터 다져 온 제조업, 즉 중후장대 산업(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과 경박단소 산업(반도체, 가전 등)이 지탱해 왔다. 이 산업이 지금 기술 혁신의 변곡점을 찾지 못한 채 성장의 한계에 부닥쳤다. 그런가 하면 4차 산업혁명을 리드해 나갈 정보통신 등 신성장 산업이 뚜렷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 구조의 대규모 미스매치(불균형)가 나타난 시점이다. 우리는 제조업 중심의 주력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신성장 산업을 일으켜야 하는 2개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의 독특한 2개 기업이 있다. 포스코와 KT다. 기업 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 민간 기업이지만 국민주로 민영화됐기에 국민들은 공공 역할을 크게 기대한다. 이 두 개의 모순된 요구가 포스코와 KT 경영을 흔드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국가 위기 가운데 포스코 권오준 회장과 KT 황창규 회장이 뚜렷한 경영 실적을 바탕으로 연임의 길에 들어섰다.
포스코는 세계 수준의 철강 제조업체, KT는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를 선도한 정보통신 업체다. 창조경제를 이끄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우뚝한 형님 기업들이다. 포스코와 KT가 지금부터 큰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4차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새로 출발하는 `권오준 2.0`과 `황창규 2.0`이 손을 맞잡은 한국형 4차 산업혁명의 모델이다.
곽재원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