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정부 조직개편, 철학부터 세워라

[전문기자 칼럼] 정부 조직개편, 철학부터 세워라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최근 주목할 만한 온라인 여론조사를 시작했다. `산업전략 수립`을 주제로 4월까지 계속되는 조사는 EU 탈퇴 이후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 영국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기초작업이다. 조사는 자국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기업과 산업 그리고 지역별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취합한다. 또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창업국가로 탈바꿈하기 위한 전략도 포함된다. 영국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의회가 심의할 정책 제안서인 녹서(Green Paper)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 작업을 총괄하는 부처는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Department for Business, Energy & Industrial Strategy)`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17일 시그마 가브리엘 부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독일 현대화를 위한 혁신 어젠다 2025`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가브리엘 부총리와 과학기술, 산업, 정치 전문가들은 향후 10년과 그 이후에도 자국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가브리엘 부총리는 “현재 독일 경제 상황이 건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현실에 안주해선 안 된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한 혁신 투자를 명확히 하고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포지엄 직후 외무부 장관으로 이동한 가브리엘 부총리가 당시 맡고 있던 부처는 `연방경제에너지부(Federal Ministry for Economic Affairs and Energy)`다.

영국과 독일 정부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활동이 눈에 띄는 것도 있지만, 이들 부처 이름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조직개편을 통해 새롭게 출범한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는 부처명에 `산업전략`을 명시했다. 4차 산업혁명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중장기 산업전략을 어떻게 짜느냐에 영국의 미래가 걸려있다는 국가적인 고민이 읽힌다.

이들 부처를 설명하는 접속사도 주목할 만하다. 주무부처를 뜻하는 `of`가 아닌 `for`를 썼다. 경제 및 산업정책을 정부가 주도하기보다 민간과 협력해 뒷받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최근 차기 정부 조직개편 논의가 뜨겁다. 각 대선주자별로 4차 산업혁명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부처별 평가와 이해관계에 따라 `쪼개고 합치는` 그림을 그리기 바쁘다. 하지만 정부 조직개편이 어떤 철학에 기반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각 부처별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한 여론전만 두드러져 보인다.

이제 차기 정부에서 전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냉철히 따지자. 앞으로 우리나라를 끌고 갈 성장엔진은 무엇인지, 또 이를 발굴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 조직과 정책은 어떠해야 하는지 철학부터 세우자. 주무부처(Ministry of ~)로써 내 밥그릇을 챙기고, 또 뺏어와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정부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닌 `국민을 위해(for the people)` 존재해야 한다. 최근의 사태가 차기 정부에 주는 준엄한 교훈이자 숙제다.

양종석 산업경제(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