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 메카 원주. 도시 초입 문막 나들목을 지나면 국내 유일 의료기기 마이스터고등학교인 원주의료고등학교가 보인다. 건등산 자락에 위치한 아담한 학교지만 어느 때보다 치열한 변신을 준비한다. 4차 산업혁명,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등 산업지형을 송두리째 바꾸는 패러다임 변화가 거세다. 기업이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력을 양성하는 학교부터 변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학노 원주의료고등학교장은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디지털 헬스케어 이슈는 의료산업을 뒤흔들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야기한다”면서 “하드웨어(HW) 중심 산업관은 과거일 뿐 앞으로는 IT 산업과 융합이 답이다”고 강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세계 ICT 기반 의료기기 시장은 2020년까지 270조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시장도 2014년 3조원에서 2020년에는 4배가 넘는 14조원까지 늘 것으로 보인다.
1970년 문막상업고로 개교해 2010년 마이스터고로 전환한 원주의료고등학교는 산업변화에 맞춰 `제3의 개교`에 준하는 변화를 꾀한다. 분야별 융합 교육을 강화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겨냥한 소프트웨어(SW) 역량 확보가 대표적이다.
이학노 교장은 “의료기기의 핵심은 HW 부품이 아닌 펌웨어 같은 SW로 바뀔 것”이라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펌웨어 프로그래밍, 3D 모델링 등 관련 교육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는 주당 6시간을 할애해 프로그래밍 수업을 진행한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비롯해 랩뷰(LabVIEW), 스마트폰 적용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이 주요 과정이다. 수업시간에 배운 기술이나 결과물은 방과후 전공동아리에서 실습한다.
사람 몸에서 얻는 각종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아날로그 전자회로 장치 학습도 이뤄진다. 신호를 디지털로 전환해 디스플레이 장치에 표현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모바일 헬스케어 기술 과정을 탐구한다.
학생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전문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결과물로 나온다. 좌식 휠체어에 기립 기능을 추가한 기립형 휠체어는 학생이 3D 모델링과 기계구조 설계, 프레임 제작, 동작 제어판 설계·제작 등을 모두 맡아 내놓은 결실이다. 운전하기 전 각종 센서로 운전자 음주 여부를 확인하는 `메디카` 시스템과 손가락 혈중 산소 포화도로 스트레스를 측정하는 솔루션도 학생 작품이다.
원주의료고등학교 취업률은 평균 95%를 넘는다. 기계와 전기·전자 융합 교육,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응하는 SW 역량까지 갖춘 학생에게 기업 러브콜이 쏟아진다. 80% 가까이가 서울이나 경기도 등 수도권이다. 원주 지역 의료기기 기업도 약 20% 학생이 취업해 지역 인력난을 해소한다. 작년에는 삼성전자에 19명이나 취업했으며 올해 졸업생 중에서도 6명이 입사했다. 바텍, 인피니언 등 국내 대표 의료기기 기업은 물론 로슈 등 글로벌 기업 입사도 줄을 잇는다.
이 교장은 “전기전자와 기계공학을 융합한 교육과정과 엑스레이, CT, 환자감시장치 등 의료기기 실험, 실습 장비를 모두 갖춘 인프라는 우리 학교 자랑”이라며 “기술 위주 대학교육과 달리 품질관리, 인허가 법규, 생산과정 등 업무 중심 교육과정으로 운영해 기업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