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탁상행정이 현장행정이 되는 소셜픽션

[기고]탁상행정이 현장행정이 되는 소셜픽션

오래 전 경기도 부지사로 재직할 때 일이다. 새벽부터 폭설이 쏟아지자 아침 출근과 동시에 교통 상황부터 챙겼다. 도청 직원은 제설 작업이 끝나 교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지인들 사진과 사연은 전혀 달랐다. “부지사님, 저희 집 앞 도로입니다. 눈이 안 치워져서 차가 엉금엉금 기고 있네요.” 제설이 안 된 곳을 서둘러 조치하도록 했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행정 품질 향상과 관련해 고민하는 사안이다. 국민 절대 다수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적극 이용한다. 그들이 올리는 사연 가운데 상당수는 행정과 관련돼 잘 취합하고 분석하면 유용하다. 예전처럼 행정력을 총동원해 조사하는 수고를 던다. 사무실 책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행정 사각지대를 크게 줄인다.

정부는 2013년부터 `공공데이터에 기반을 둔 과학 행정 구현`을 정부3.0 핵심 과제의 하나로 추진했다. 객관화된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미래 변화에 선제 대응하는 정부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세계 추세로, 미국은 `증거기반정책위원회법`을 지난해 3월 제정했다.

행정자치부는 데이터에 바탕을 둔 과학 행정을 본격 추진하기 위해 올해 `데이터 기반 행정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 근거 법을 마련하고자 한다. 활용 가치가 낮은 공공 데이터의 품질 관리를 강화, 미래 예측이 가능한 우수 공공 데이터를 확보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이 생산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어떻게 행정에 활용하느냐다. 이를 위해 공공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혜안`을 확대 개편, 공무원 의사 결정을 돕는 도구로 만들 예정이다. 개편되는 혜안은 민간 데이터도 실시간 분석, 지역별 이슈를 조기에 파악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아직은 초보 단계지만 발전시키면 정책 조언자 역할까지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최근 정부는 중요 현안인 고병원성 조류독감(AI) 확산 방지를 위해 매주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를 한다. 거점 소독 시설 확대, 방역 인력 확충, 축산 농가 교육 강화, 축사 현대화 등 다양한 방안이 제시된다.

문제는 이 가운데 어떤 정책을 우선 추진해야 할지, 어느 정책 조합이 최적의 효과를 낼 것인지 직접 추진해 보기 전까지는 파악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경험이나 직관에 기반을 둔 정책 결정이 실패로 드러난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몇 년 전 한 통신사는 차량 이동 중에 통신 데이터를 활용, AI 확산 경로를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했다. 정부가 더 다양한 민간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어떤 정책의 조합이 AI 예방이나 확산 방지에 최적인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빅데이터 활용 기술과 인공지능(AI) 수준을 높여 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행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을 때 흔히 받는 비난이 `탁상행정`이고, 대안은 `현장행정`이다. 그렇다고 현장행정이 만능은 아니다. 특정 시점, 특정 지역의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데이터 기반 행정으로 정확한 대안을 찾아낸다면 책상 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수행한 탁상행정이 어느 현장 방문보다 더 훌륭한 현장행정이 되는 역설 상황이 도래한다.

아직은 갈 길이 먼 공상과학(SF)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는 공상과학소설의 상상력이 과학 발전을 낳았듯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꿈, 즉 소셜픽션을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발은 현실에 굳건하게 두되 눈은 항상 미래를 향하는 소셜픽션을 쓰는 공직자가 늘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 sunglki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