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유전체 분석 업계가 단순 분석 업무에서 탈피, 데이터에 기반한 `콘텐츠`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게놈 100달러` 시대가 가시화되면서 바이오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역량에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마크로젠, 테라젠이텍스 등 국내 유전체 기업은 이르면 내달부터 일루미나 최신 분석 장비 `노바식 시리즈`를 도입한다. 유전체 분석 1000달러 시대를 넘어 100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출발점에 섰다.
지난달 출시한 일루미나 노바식6000은 48시간 이내 60명 총 유전체에 해당하는 6테라바이트(TB) 유전체 정보와 200억개 세포 분석이 가능하다. 3년 전 유전체 분석 1000달러 시대를 연 `하이식 엑스 텐`과 비교해 분석 시간이 최대 8분의 1 수준까지 줄었다.

국내에서는 마크로젠이 내달 일루미나 본사로부터 장비를 도입하고 테라젠이텍스도 뒤를 잇는다. 속도뿐만 아니라 유전체 분석에 가장 중요한 분석 범위(인원)를 획기적으로 확대한다. 3년 안에 일루미나 장비를 활용한 분석비용이 기존 150만원에서 10분의 1 수준인 `100달러(약 12만원)` 시대까지 점쳐진다.
국내 유전체 분석 업계는 전장 유전체 분석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면서 소비자 수요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용 문제로 건강관리, 진단, 치료 영역에 확산이 더뎠지만 장벽이 해소된 셈이다.
테라젠이텍스 관계자는 “노바식 등 첨단 분석 장비 출시로 매년 유전체 분석 비용은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며 “비용 문제로 연구영역에 국한했던 유전체 분석이 진단 등 서비스 영역으로 확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유전체 분석 수요 증가가 국내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유전체 분석 100달러 시대는 비용 하락, 분석 범위 확대보다는 관련 시장 패러다임 전환이다. 장비 성능이 상향평준화되면서 시장 경쟁력이 하드웨어(HW)에서 콘텐츠로 전환하는 변곡점이다.
유전체 분석 업계 관계자는 “과거 비싼 일루미나 장비만 도입하면 대규모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 시장 점유율을 단기간에 확보했지만, 이제는 장비 성능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킬러 콘텐츠 확보에 생존이 달렸다”면서 “분석 보고서 작성에서 벗어나 유전체 정보에 기반한 신약 개발, 약물 정보, 건강관리 서비스 등 독자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유전체 분석 산업은 과도기다. 정부는 지난해 민간 유전체 분석 기업도 병원을 통하지 않고 일반인 대상 유전체 분석 서비스(DTC)를 제공토록 허용했다. 3월부터는 암 진단과 치료에 유전체 분석을 적용할 경우 건강보험까지 적용된다. 하지만 생명윤리 등을 이유로 DTC 영역은 피부, 미용 등 건강관리 부문에 국한하고, 암 패널 유전체 분석은 병원에서만 이뤄지게 했다. 유전체 분석 업계에 절반만 시장이 열린 것이다.
유전체 분석에 대한 시장 검증,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해 대대적 규제 개혁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점진적으로 시장을 열 것이라고 밝힌 만큼 업계 경쟁력 확보가 우선이다. 유전체 분석 업계는 병원 등에서 의뢰한 유전체 분석 업무를 위탁받아 성장했다. 대당 10억원이 훌쩍 넘는 외산 장비 탓에 수익률도 낮다. DTC 시장이 열렸지만 업계 간 차별화 부족, 비즈니스 모델 불확실 등으로 확산이 쉽지 않다.
SW에 초점을 맞춰 전량 외산에 의존하는 바이오 빅데이터 분석 도구를 국산화해야 한다. 확보된 데이터를 병원, 제약, 연구소 등과 공유해 신약 개발 등을 위한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
김주한 서울대의대 의료정보학교실 교수는 “사실상 HW에 의존하는 유전체 분석 시대는 끝났다”며 “클리니컬 패키지가 가능한 SW를 개발하고 약물 혹은 질병 반응성, 신약 개발 등을 위한 차별화된 기술 확보가 생존 방안”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