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는 공급, 필요는 혁신을 각각 낳는다. 문명 발전에 따라 정보량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다가 나무판에 글을 새겼고, 책을 발명했으며, 컴퓨터를 만들었다. 특히 21세기에 이르러 정보는 기하급수로 폭증했다. 방대한 정보를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하기 위해 컴퓨터 처리 성능은 나날이 향상된다. 사람이 생산하는 정보는 물론 이제는 사물이 스스로 정보를 쏟아 낸다. 최근 슈퍼컴퓨터와 고성능컴퓨터(HPC)가 주목 받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이미 국내에도 HPC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이세돌을 상대로 5전 4승의 결과를 끌어낸 구글의 알파고 덕분에 일반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딥러닝이나 머신러닝(기계학습) 등 인공지능(AI) 관련 분야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5년 동안 1조원을 투자한다는 `지능정보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국산 AI `엑소브레인`은 지난해 11월 방송 프로그램 `장학퀴즈`의 녹화에서 기존의 장학퀴즈 우승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슈퍼컴퓨터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및 기상청 등 기존에 사용해 온 정부기관에서 자율주행자동차, 의료, 개인비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중소 규모의 HPC 수요가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IDC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소매업, 헬스케어, 조립제조 부문이 전체 인지·AI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지쯔 역시 슈퍼컴퓨터 분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1993년부터 중성미자 관측을 시작한 `슈퍼 가미오칸데` 시스템은 후지쯔가 20년 동안 x86 서버와 스토리지 등 정보기술(IT) 부문을 지원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 역시 “컴퓨터가 있었기에 노벨상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디지털 윈드터널에서도 윈드터널에서 발생하는 우주선 및 항공기의 유체역학 데이터 분석에 슈퍼컴퓨터를 활용한다. 1993년 최초 구축 때 140노드 236기가플롭스 성능이던 슈퍼컴퓨터는 어느새 3240노드 3.49페타플롭스로, 약 360만배 향상된 성능을 확보했다. 최첨단 공통 HPC 기반 시설(JCAHPC)의 슈퍼컴퓨터 `오크포레스트 팍스(Oakforest-PACS)`는 세계 6위 슈퍼컴퓨터로 등재됐다. x86 서버 8208대로 구성돼 13.55페타플롭스 성능을 낸다. HPC Graph 500 랭킹 세계 1위도 역시 슈퍼컴퓨터 `K Computer`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의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에 활용된다.
하드웨어(HW)뿐만 아니라 미들웨어 등 소프트웨어(SW)도 중요하다. 애플은 HW에 최적화된 SW를 개발해 완성도를 올리는 방식을 채택, 제품 신뢰성과 효율성을 대폭 높일 수 있다. 후지쯔도 슈퍼컴퓨터를 관리하기 위한 HPC 미들웨어를 보유했다. 앞에서 소개한 `슈퍼 가미오칸데` 및 `JAXA` 등 슈퍼컴퓨터에서 폭넓게 운용된다. 최근 화두가 되는 딥러닝 분야에서도 도심 교통, 보안 관제 등 실생활에 밀접한 분야에 활용된다. 예를 들어 노상의 주차장 표식 인식, 운행 중인 자동차 구분, 조도에 따른 영상 조정 등을 학습을 통해 영상 분석 능력을 스스로 개선하는 것이 가능해 정확도를 비약 향상시킬 수 있다.
지난해 모든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장 큰 화두로 떠올랐다. 디지털은 실생활의 가장 가까운 영역에서 삶의 변화와 혁신을 가져온다. 디지털 혁신을 뒷받침할 가장 강력한 기술의 하나가 바로 고성능 컴퓨팅 기술이다. 앞으로 기존 산업과 사회 인프라를 탈바꿈시킬 디지털화의 핵심 기술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성패와 연결될 인프라로 재평가돼야 할 것이다. 분명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장에서 새로운 혁신과 미래를 열어 갈 열쇠가 될 것이다.
이영환 한국후지쯔 전략마케팅본부장 yhlee@kr.fujits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