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시각장애인에 빛을

[기자수첩]시각장애인에 빛을

일반 도서를 음성과 점자로 변환하려면 까다로운 수작업이 불가피하다. 책장을 한 장씩 일일이 뜯어서 스캔 작업을 거친 뒤 광학 문자인식(OCR) 기술로 텍스트 자료를 추출해야 한다. 전문 통계 서적의 경우 텍스트로 변환하는 데에만 1년이 걸린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이 최근 도서 교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장애인용 도서 제작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자원봉사자가 교정 작업에 참가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들은 원문 책자와 장애인용 도서 사이의 오타, 문자 깨짐과 같은 해석상 오류를 바로잡는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장애인용 도서 생산 속도가 크게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속을 뜯어보면 고육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출판사로부터 디지털 파일을 받게 되면 안 해도 될 일이기 때문이다. 저조한 디지털 파일 제출률이 이 같은 번거로움을 야기한 셈이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디지털 파일 제출을 꺼리는 출판사에 과태료를 매기는 도서관법 개정안이 2015년에 등장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여의도 입성에 실패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해결책 없이 평행선만 긋고 있는 이유다. 출판사가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제출하는 책에서 차지하는 디지털 파일 비율은 2014년 이후 제자리걸음이다. 수년째 50%대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출판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저작물 유출 우려가 발목을 잡는다.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도 없다. 출판사는 저작권법상 배타 발행권만 갖는다. 책 설계도나 다름없는 디지털 파일을 외부에 넘길 경우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결국 장애인 독서 갈증만 깊어지고 있다. 전국에 시각장애인 숫자는 25만여명. 독서 사각지대를 없애야 할 책임은 국립장애인도서관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갖고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이유로 사회 약자를 외면해선 안 된다. 대승 차원의 결단이 요구된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