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인력 자원 개발 분야 전문가다.
직업 교육훈련과 노동 개혁 관련 저서만 30여권이다. 지난해에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박 이사장이 낸 저서 `한국경제발전과 직업교육훈련`을 스페인어로 번역했다.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사정위원회와 청년고용촉진특별위원회 등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한국형 취업 모델인 `일·학습 병행제`를 처음 설계하고 제안한 주역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을 거쳐 2014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 후 그동안 자신이 주장해 온 능력중심사회와 열린 노동 시장 구현을 위한 실천 전략을 수립, 현장 접목에 주력했다. 내부 소통과 조직 혁신을 위해 매주 금요일 오전에는 직급별 독서토론회도 열고 있다.
박 이사장을 2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만나 일·학습 병행제와 청년 실업난 해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 이사장은 “청년들이 잘못된 고용 문화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도전 정신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낮은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공단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
▲올해는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해 추진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개발과 표준 확산, 일·학습 병행제, 청년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연수 사업인 K-무브(MOVE)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콘텐츠 개발과 근로자들의 기본 역량 확충에도 주력한다. 올 10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는 제44회 아부다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20번째 종합 우승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일·학습 병행제를 도입한 주역이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독일과 스위스식 도제 제도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한국 실정에 맞게 설계한 한국형 교육훈련 제도다. 2013년 5월 직업능력개발원장 시절 정부에 제안해 능력중심사회 만들기의 핵심 과제로 선정됐다. 그해 시범 사업을 거쳐 성과가 좋아 2014년부터 고용노동부 주도로 본격 진행했다. 2015년 고교 단계 일·학습병행제 산·학 일체형 도제학교, 고교·전문대 통합 과정, 4년제 대학 3~4학년 대상으로 장기 현장실습형을 도입했다.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나.
▲독일은 도제 제도가 인재 양성 방법으로 정착, 정규 교육 과정으로 인정받는다. 독일은 민간이 일·학습병행제를 주도한다.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비용도 부담한다. 일주일 가운데 이틀은 공부하고 사흘은 기업 현장에서 일한다. 스위스에 갔더니 5명이 일하는 공장에 2명이 인턴이었다. “정규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노”라고 했다. 의아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인력을 양성해야 남이 기른 인력을 채용할 때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와 대비됐다.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30% 정도다. 한국과 달리 희망이나 적성에 따라 진로를 결정한다. 독일은 학벌 중심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다. 사회·경제 상황에서 고졸자와 대졸자 간 차이가 없다.
-현재 일·학습 병행제 참여 기업 수와 학교는.
▲2013년 시범 사업 참여 기업은 51개, 학습 근로자는 171명이었다. 지난 2월 말 현재 9500개 기업에 학습 근로자는 3만6000명으로 급증했다. 공동훈련센터는 74개, 도제식학교는 163개, 통합교육 육성사업(Uni-Tech)은 16개, 4년제 대학은 32개가 참여했다. 올해 1만개 기업에 7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제는 외형(양)에서 내실(질) 관리를 해야 한다.
-취업률은.
▲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올해 처음 졸업하는 9개 도제학교의 취업률이 약 80%였다. 이들은 현장 훈련과 이론 교육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립한다.
-청년 해외 취업은 어떻게 지원하나.
▲청년 해외 취업 지원은 K-무브로 브랜드화, 준비부터 체계를 갖춰 지원한다. 찾아가는 해외 취업 설명회를 비롯해 서울 K-무브센터, 월드잡플러스 홈페이지, 멘토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 청해진대학을 도입, 현재 8개 대학에서 운영하고 있다. 취업하면 장려금을 지원한다. 동남아시아, 중남미 같은 해외 일자리 미개척 지역은 400만원이다. 나머지 26개국은 200만원이다.
-몇 명이나 해외로 나갔나.
▲2014년 1679명에서 지난해 4811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부산 K-무브센터를 설치하고 해외 K-무브센터와의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공단도 직접 인력을 해외에 파견했다. 지난해 독일 강소기업에 7명을 파견, 그 가운데 5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올해도 인턴을 파견한다. 독일 국제 마이스터고에도 학생을 보낼 계획이다. 개인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일자리 고용디딤돌 프로그램은 잘되고 있는가.
▲청년 취업을 돕기 위해 지난해부터 민·관 주도의 시범 사업으로 시작했다. 17개 대기업과 21개 공공기관을 선정, 청년구직자 7667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연관기관에 취업시키기 위함이다. 올해 목표는 1만명이다.
-젊은이들이 스펙 관리에 몰두하고 있다.
▲청년들이 진로를 결정하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스펙 관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불필요한 스펙 쌓기에 치중하면 비용과 시간 낭비다. 대학생 1인당 취업할 때까지 평균 4300만원의 비용을 지출한다고 한다. 요즘 기업 채용 때 과거처럼 스펙을 중요시 않는다. 공단도 직원 채용 때 토익시험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다. 자체 개발한 영어 시험만 치른다.
-이 문제 해소 방안은 무엇인가.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렵다.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일자리 양극화와 임금 불평등 같은 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대기업 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약 10%이지만 비정규직이 받는 급여조차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고졸 취업을 확대해야 한다.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는 37년 전인 18살에 공장 고졸 견습공으로 입사, 업계 최초로 글로벌 완성차 여성 CEO가 됐다. 맥도날드는 아르바이트생도 CEO가 될 수 있는 열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기능인에 대한 인식 전환과 산업 현장이 요구하는 직무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노동 개혁과 기업 성과연봉제 도입은 어떻게 보나.
▲노동 개혁의 골자는 법정 근로시간 단축, 파견 직무 확대, 기간 연장 등 일자리 나눔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직무 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 운영 및 임금 체계는 고용 시장을 능력 중심으로 작동하는 출발점이다. 노사 간 신뢰를 기반으로 한 노동 개혁을 통해 청년층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 시장의 임금 이중 구조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 개혁은 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때 금 모으기같이 명분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닫힌 노동 시장을 직무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직업훈련과 관련해 보안해야 할 제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부와 공공기관은 산업 현장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인프라 구축과 직업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공단은 지난해까지 로봇 지능 개발과 같은 26개 미래 유망 직무를 포함, 897개 NCS 개발을 지원했다. 또한 앞으로 직업훈련은 민간이 수요자 중심으로 자율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과도기다. 우리도 학벌이 아닌 능력중심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독서 간담회를 매주 진행하는 이유는.
▲소통과 열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지난해부터 직급별 CEO와 독서 간담회를 매주 금요일 오전에 개최한다. 2주 전에 읽을 책을 정한다. 토론회는 1시간 하며, 외부 전문가가 사회를 본다. 끝나면 점심을 함께한다. 반응이 좋다. 지난주에는 `당신은 겉보기에 노력하고 있을 뿐`이란 책을 읽었다. 참여자의 한 사람이 제대한 아들이 복학을 하지 않고 “개인인터넷 방송을 하겠다며 장비 구입을 도와 달라”고 해서 고민했는데 이 책을 읽고 “그렇게 했다”고 한다. 이 밖에 `런치 톡톡` 16회 , `무비 톡톡` 6회, `주니어보드` 5기 등을 진행했다. 공단 소속 기관 24개를 포함한 이해 당사자들과 1600여회 만났다.
-청년 취업자에게 하고 싶은 당부의 말은.
▲잘못된 고용 문화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도전 정신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낮은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취업자들은 조직에 안주할 게 아니라 미래 변화를 주시하면서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를 먼저 개발했지만 도태한 코닥은 닫힌 사고의 전형이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제시한 `무실역행(務實力行)`이다. 실질을 중시하고 실천에 힘쓴다는 의미다. 취미가 걷기와 취미가 라디오 듣기다. 클래식과 팝송을 즐겨 듣는다. 8월에 퇴임하면 대학으로 돌아간다. 퇴임 전에 저서 2권을 더 낼 계획이다.
박 이사장은 한국외국어대에서 영어학·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쳐 1997년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고용노동부 자체평가위원장,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선진회위원장으로 일했다. 2011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을 거쳐 2014년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회장직도 맡고 있다. `직업능력개발의 비전과 과제` `전환기, 한국노동시장의 길을 묻다` 등 30 여권의 저서를 냈다. 2015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