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대학 교수가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물었다. “신보다 더 선하고, 동시에 악마보다 더 악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누구도 정답을 맞히진 못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집에 돌아가서 초등학교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고 답했다고 한다. “Nothing”이죠. 사이버 기술 발전으로 점점 복잡해져 가는 사회에서 단순함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3D프린터, 정보 보호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주목받고 있다. 유니언은행(UBS)이 발표한 4차 산업혁명 기술 부문 적응도가 23위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준비로 400억원, ICT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약 1조원을 책정했다. 창의 R&D 육성으로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만으로 정책이 성공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부, 기업, 국민이 함께 노력할 때 성공 가능성은 높아진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공통 요소는 소프트웨어(SW)다. 감초가 모든 한약에 포함되는 것처럼 문제를 분석하고, 설계하고, 해결하는 모든 과정에 SW가 개입한다. 우수한 SW가 전제되지 않으면 어떤 기술도 사상누각이 되는 이유다. 그러나 10년 이상 세계 SW 시장 점유율 2%대에 정체돼 있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SW 변방국이다. 오픈소스SW(OSS) 커뮤니티에 한국인이 500명 이상 활약하고 있다곤 하지만 리누스 토발즈 같은 스타급 리더는 전무하고, 참여 규모도 아직 조족지혈이다. 세계 시장에 이름을 올린 SW 기업도 찾아보기 어렵고, 변변한 SW 기술 연구소도 없다. 대기업도 제조업 지능화는 시도하긴 하지만 정작 SW 인력 양성과 산업에는 관심이 없다. 인정하기 싫은 대한민국의 SW 분야 현실이다.
그러나 SW 기술과 시장을 포기할 순 없다. SW 포기는 곧 미래 포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수한 SW가 없으면 AI는 물론 빅데이터나 로봇도 여타 융합 산업도 핵심 기술 없이 부품만을 수입해 조립하는 저급 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과도할 정도의 최고 SW 전문가를 전폭 양성하고, 융합 분야 전문가의 SW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인력 양성 정책은 안 돼도 10년 이상 시행이 지속해야 한다. 정부가 20여개 SW중심대학을 지원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등 SW 중심국가 건설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제는 대기업을 포함해 4차 산업혁명에 관심 있는 기업도 SW 전문가 양성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인력 양성 참여와 함께 전문가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터전 마련, 처우 개선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정부의 SW 산업 육성 정책은 어느 정도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정책이 정책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어쩌나 하는 기우가 있을 뿐이다. 프로젝트성이 아니라 지속된 정책 추진으로 앞으로의 대한민국 50년을 위한 생존 게임인 4차 산업혁명에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3차 산업혁명의 성공이 `빨리빨리` 문화로 가능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웨어 육성 전략`으로 성공했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