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험에 가입하거나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종이 계약서가 사라졌다. 계약서에 이름과 서명, 개인정보를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보관이 어려운 영수증도 스마트폰 앱으로 받아볼 수 있다. 업체에 따라 별도 앱을 설치해야 하지만 구매 내역 관리와 증빙이 쉬워졌다. 고용계약서도 인터넷으로 작성해 제출 가능하다.
전자문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부와 기관, 기업에서 사용하는 주요 문서 외에 생활 속에서도 전자문서 사용이 늘었다. 종이문서를 전자문서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전자문서 도입 서서히 확산
한국인터넷진흥원이 국내 63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기업 전체 업무 중 전자문서 활용률은 57.3%를 기록했다. 절반 이상이 업무에 전자문서를 쓰는 셈이다. 업무 유형별로 결재가 68.5%로 가장 많았고 재무회계 66.4%, 업무보고 54.2%, 문서발송 53.6%, 사업입찰 50.7% 순이었다.
전자문서 시장 규모도 2015년 3조3864억원에서 2020년 4조9756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8.0%다. 기존 정보 보관과 정보 재활용 수요가 잇따르면서 산업 전체 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부분은 서비스 분야다. 2020년에는 서비스 시장이 68.3%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기업 매출 비중을 보면 기업과 기업 간(B2B) 거래가 가장 많다. 이중에서 제조 업종이 23.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유통·서비스(18.5%), 정보통신(10.3%)이 뒤를 이었다. 공공부문은 22.9%인 반면에 기업과 소비자 간(B2C) 시장은 4.1%로 조사됐다. 전자문서가 제조와 공공, 유통·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책과 기술, 인식 변화가 시장 확대 견인
정부 정책과 기술 개발은 고객인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각종 법령에 명시된 서면, 문서, 서류 등을 종이문서로 해석하는 사회관행 때문에 전자문서 사용을 꺼려왔다.
하지만 최근 일반적인 내부용 전자문서는 물론 대외전달, 증빙용, 계약 등에도 전자문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위변조 검증과 타임스탬프 등 원본 생성 요건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다.
금융권에서도 문서 생성을 종이가 아닌 디지털 기반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자청약, 각종 가입 신청서 등을 전자서식(e-Form)으로 전환하고 공인전자문서센터 등 외부 문서보관서비스에 위탁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전자문서 사용 확산의 열쇠는 `효력`이다. 종이문서와 동일한 효력을 나타내야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개인도 쓸 수 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에서도 “전자적 형태로 돼 있다는 이유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자문서가 단순히 편리함에 의존해서는 시장 확대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 준수를 위한 시장이 분명 존재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 정책은 전자문서 시장을 이끌기도 하지만 걸림돌로도 작용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법무부와 전자문서 기본법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다. 격주로 법개정위원회를 연다. 전자문서와 종이문서 효력이 같다는 걸 명확히 하는 작업이다. 개정위원회는 6월까지 개정안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하반기 정부 입법을 추진키로 했다.
미래부는 전자문서 기본법 해설서도 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법조항을 적용하기 쉽게 설명해놓았다. 전자문서를 쓰라는 말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래부는 이를 위해 4900여개 법 조항 중 전자문서와 관련된 1403개 조항을 일일이 따져봤다. 법무부 검토를 거쳐 이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미래부 관계자는 “기업 현장을 방문해보면 법이 명확하지 않으면 안 움직인다”면서 “거래나 증빙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말했다.
◇과제는 기업 경쟁력 강화 및 정책 뒷받침
전자문서 사용은 늘지만 기업 경쟁력은 아직 낮은 상황이다. 선진국과 비교해 솔루션 산업은 64.7, 서비스 산업은 63.3, 장비(HW)는 73.9에 그쳤다. 해마다 간격을 좁히지만 기술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해외진출도 어렵다. 전자문서 특성상 대부분 솔루션이 내수 고객 중심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해외 진출을 추진 중인 기업은 지난해 기준 6.2%다. 이미 진출한 기업은 3.9%에 불과하다. 추진 계획이 없는 기업은 86%에 달한다. 1000여개에 달하는 전자문서 기업 대다수가 소규모 형태라 자체 진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내수 상황도 여의치 않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기업 경영하기 가장 어려운 점은 수익구조 취약(46.8%)이다. 해외 기업과 달리 공공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다. 실적 확보 차원이 아니면 참여하기 어렵다는 대답이다. 취약한 수익구조는 결국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자금 확보(26.9%), 전문인력 확보 어려움(22.4%)으로 이어진다.
전자문서 업계 한 관계자는 “전자문서 산업은 법적 효력 또는 정책에 영향을 강하게 받는 산업”이라면서 “기업 자생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자문서 법적 증거력 보장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국내 전자문서 관련 주요세부시장 현황
<표>전자문서산업 업종별 분포(출처:한국인터넷진흥원)
유창선 성장기업부(구로/성수/인천)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