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의 사망 원인은 사실 사고다. 레밍은 시야가 30㎝에 불과한 근시여서 바다를 개천으로 착각했다. 만약 레밍이 좀 더 먼 거리를 볼 수 있었다면 '집단 자살 나그네쥐'라는 오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바다인지 개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건 기업도 마찬가지다. 노키아, 모토로라 등 스마트폰 간판 기업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화웨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떠올랐다. 안목이 운명을 갈랐다. 노키아 등이 재정 연도와 재정 분기에 맞춰 계획을 수립한 것과 달리 화웨이는 10년 단위의 청사진을 설계했다. 세계 스마트폰 3위도 스마트폰에 진입한 지 10년이 훌쩍 지나 이룬 성과다.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시작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저가폰부터 하이엔드급까지 스마트폰 라인업을 구축했다. 자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린'도 개발했다. 통신·단말 특허 보유량이 세계 5위에 오를 정도로 연구개발(R&D)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럼에도 화웨이는 자체 운용체계(OS)를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OS '타이젠'을 계속 개발한다. 최근에는 타이젠 3.0을 탑재한 Z4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우려도 적지 않다.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87.8%에 이른다. 애플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마트폰 제조사가 안드로이드에 종속된 상태다.
현재 타이젠 OS 스마트폰도 서아시아와 남아프리카 등 중저가폰 시장을 겨냥한 Z 시리즈뿐이다. 스마트폰을 넘어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시장을 본다면 희망이 있다. 타이젠 3.0은 음성 인식을 최초로 지원한다. 향후 자체 인공지능(AI) 서비스 '빅스비(Bixby)'와 시너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스마트폰 없이도 음성으로 조종 가능한 스마트홈을 그려 볼 수 있다.
화웨이는 당장 성과를 넘어 10년 이후 미래를 내다봤기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낮다는 이유로 타이젠 개발을 중단해선 안 된다. 근거리만 본 레밍의 죽음에서 교훈을 얻길 바란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