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건부 지원' 방안에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등 유가증권을 쥐고 있는 금융투자회사 속내가 복잡하다.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사채권자에게 자율 구조조정 여부를 맡겼기 때문이다.
23일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금융투자업계가 보유한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와 기업어음(CP) 규모는 135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투자증권(400억원), 하나금융투자(300억원), 유안타증권(241억원), KB증권(211억원), 동부증권(200억원) 등 5개사는 다음 달 열리는 사채권자 집회에서 정부가 제시한 구조조정안을 논의해야 한다.
정부는 1조5000억원 규모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절반은 출자전환으로, 나머지는 3년 유예 후 3년 동안 분할 상환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음 달 회사채 만기 상환을 앞둔 증권사들은 정부 결정에 억울함을 표시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4년까지만해도 신용등급 A수준으로 상환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유동성 위험이 불거지면서 순차로 회사채를 팔았는데 사채권자에게 부담을 지우니 당황스런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만기는 당장 4월, 7월, 11월 3차례에 걸쳐있다. 당장 다음 달까지만 기다려도 무리 없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와 CP 위험성이 커지자 고수익을 기대한 개인투자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물량을 받았다. 기관투자자들이 내놓은 물량 대부분은 개인투자자에게 넘어갔을 것으로 증권가는 관측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이 발행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1조5000억원 가운데 30%가량은 개인투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채 보유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유가증권들은 말그대로 그 즉시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면서 회사채 투자자 대다수가 위험을 감수하고 회사채를 사들였지만 이런 방식으로 정부가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지에 대해서는 가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주식에 투자한 이들은 외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외부감사인의 감사 지연으로 인해 대우조선해양 상장폐지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하반기 거래 재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주식 투자자의 회수 가능성은 다소 높아졌다.
자연스레 다음 달 열릴 사채권자 집회에서도 회사채 만기 시점에 따라 구조조정안 수용 여부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 회사채 절반을 출자전환한다 해도 거래재개 이후에는 수조원에 달하는 주식이 더해지니 가치는 휴지조각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만기 시점별로 조건을 차등화 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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