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모 일간지에 반도체·디스플레이 혁신을 위해 새로운 재료와 소재 개발이 시급하다는 기사가 실렸다. 해당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대기업 기술 임원들의 공통된 견해다.
4차 산업혁명과 반도체·디스플레이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빠르게 진입하려면 새로운 소재 개발은 필수다.
우리는 재료·소재 분야에서 훌륭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재료·소재 연구 역량은 세계 3위에 해당하는 논문 수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재료공학 전공 대학원생은 5437명에 이른다. 이들이 받은 교육은 질이나 양에서 모두 세계 수준이다. 미국에 출원한 소재 분야 특허 수는 5위에 올라 있다. 재료·소재 분야에서 막대한 인력 자원과 우수한 연구개발(R&D) 능력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요 기업도 가까이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자동차와 가전 분야는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이다. 휴대폰 역시 세계 1위 품목이다.
그렇다면 기술력은 어느 수준인가. 소재 분야는 수출액 기준으로 세계 6위다. 그러나 부가가치가 높은 소재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 일본이라는 강적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재료·소재 분야의 대일 무역 역조는 심한 수준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R&D 능력, 인력 자원, 수요 기업을 가지고 있는데도 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왜 최고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먼저 대학과 연구소 등 R&D 자원과 소재 산업 간 효과적인 연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재료·소재 분야 연구자들의 마음가짐도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변수다.
재료·소재 분야 논문 수 3위, 특허 출원 5위는 우리나라가 엄청난 양의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는 의미다. 이 연구 결과가 재료공학의 성과라면 실제 생산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가 사장되고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한다. 그렇게 일군 연구 결과가 사장되는 것은 연구비를 제공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국민 세금으로 나온 연구 결과는 국민들의 생활 편의를 제공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 산업체에 이전해 국민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R&D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학과 산업계를 연결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학이 생산한 연구 결과는 기술성숙도(TRL) 전반부(1~3단계)에 해당한다. 반면에 산업체는 TRL 후반부(7~9단계)에 해당하는 기술 수준을 요구한다. 대학의 연구 결과를 산업체에 적용하려면 별도 파일럿 플랜트 규모의 추가 연구(TRL 4~6단계)가 필요하다. 출연연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주요 산업별로 출연연이 있지만 유독 소재 산업은 금속, 세라믹, 화학 등 분야별로 산재돼 있다. 소재 분야의 R&D 효율을 더 높게 추진하려면 이 분야의 전체를 관장하는 독립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우수한 인력 자원, 세계적 R&D 역량, 세계 최고의 수요 기업이라는 구슬을 잘 꿰어서 소재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보배를 만들자.
김해두 재료연구소 소장 khd1555@kim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