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고 싶어도 못 사는 전기차

[기자수첩]사고 싶어도 못 사는 전기차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운행비 격인 전기요금이 내연기관차에 비해 5분의 1 이하다. 보조금 같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의 혜택이 많아 부담도 적다. 탄소 저감이나 친환경 실천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한몫한다.

이들 대다수가 전기차 구매를 최종 결정하는 단계에서 꺼낸 질문은 '이 차가 한 번 충전하면 얼마나 주행하나요?'다. 아직 전기차 충전소가 부족하거나 전기차는 주행 거리가 짧아서 불편할 수 있다는 걱정이 많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주행 거리가 긴 차를 선택해야 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런 때 1회 충전으로 500㎞를 달린 전기차가 한국 출시를 앞두고 한껏 주목받았다. 장거리형 전기차라고 해도 300㎞ 정도 달리겠지 생각한 사람들이 실제 이 차의 달린 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이 차는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가 공인한 1회 충전 시 주행 거리보다 80~100㎞를 더 달렸다.

이 차의 무게는 종전 차량보다 0.5톤 이상 덜 나간다. 물리적으로 배터리 용량만 늘린 게 아니라 에너지 밀도를 높인 기술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차량 가격도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200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이 전기차는 사전 계약 1시간 만에 1200명이 신청에 몰리면서 조기 마감됐다. 더구나 추첨을 통해 구매권을 손에 쥔 당첨자는 380명뿐이다. 회사가 미국 본사로부터 배정받은 물량이 고작 600대 정도로, 380대를 뺀 나머지 200여대는 렌터카 등 기업간거래(B2B)용으로만 판매될 예정이다.

결국 장거리 주행 전기차를 손꼽아 기다려 온 고객은 또다시 전기차를 언제 살지 모르는 대기 수요자로 남게 됐다. 테슬라 보급형 전기차의 한국 출시가 당초 기대와 달리 내년으로 미뤄지면서 올해 전기차 시장을 키울 신차 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량 확보나 출시일도 지키지 못하면서 홍보에 치중한 탓에 한국 시장은 매년 대기 수요만 늘고 있다. 덧붙여서 전기차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과 내연기관차 구매 전환도 덩달아 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이 지원되는 기간만이라도 정부가 제조사와 적극 협상, '배정 물량 무제한' 같은 쪽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박태준 전기차/배터리 전문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