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농어촌이나 도서지역 주민 생활을 바꿀 수 있을까. 인터넷 속도만 빨라진다고 삶이 달라질까. 결론은 “그렇다”다.
주민들은 직접 기른 농작물을 온라인 장터에서 판매한다. 쉴 때면 초대형 TV로 강사와 연결해 문화강좌도 듣는다. 아이들은 영상통화로 외국인과 대화하며 언어, 문화를 배운다. 홀로 지내는 노인을 매번 찾아가지 않고도 보살필 수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추진한 농어촌지역 광대역 가입자망(BcN) 구축사업이 준 혜택이다.
초고속인터넷으로 일상이 새로워진 전남 신안군 임자도를 직접 찾았다.
임자도에 가려면 점암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한다. 배에서 내려 섬에 오르자 '기가 아일랜드 1호'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KT가 농어촌BcN 주사업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9월 구축을 마쳤다.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가 20배 이상 빨라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극초단파 무선통신망인 마이크로웨이브 방식을 썼다. 마이크로웨이브 방식은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접시 모양의 안테나를 단 철탑을 세우고 무선으로 통신한다.
동행한 김형순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섬과 섬을 잇는 한국전력공사 철탑 위로 광케이블을 끌어왔다”고 설명했다.
가까운 임자초등학교에 들렀다. 학교 옆 언덕에 스마트팜이 보인다. 330여㎡(100평) 남짓한 스마트팜에 들어서니 4월이나 돼야 볼 수 있는 튤립이 이미 피었다. 임자도를 대표하는 튤립이 이곳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이들은 직접 심은 튤립이 자라는 게 신기한 듯 수시로 들른다. 안쪽으로는 다 자란 배추가 밭을 이루고 있다. 직접 기른 배추로 김치도 담근다.
박채연 양(6학년)은 “IT 덕분에 식물을 재배하는 게 어렵지 않다”면서 “키운 작물은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무실에서도 모니터를 이용해 스마트팜 내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정 시간이 되면 상부에 매달린 호스에서 물이 나온다. 식물 성장 속도에 맞춰 알아서 물을 준다. 내부 온도나 습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창문을 열어 환기시킨다. IT를 이용해 자동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니 딱히 할 일이 없다.
문희숙 임자초등학교 교장은 “스마트팜 활용도와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올해부터는 2~3종 식물만 재배할 계획”이라면서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드론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아이들 꿈도 바꿔놓았다.
김종선 군(6학년)은 프로게이머라는 꿈이 생겼다. 농어촌BcN 사업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인터넷 속도가 3Mbps에 불과해 온라인 게임 자체가 어려웠다.
정지우 양(6학년)은 5학년 때부터 글로벌 멘토링에 참여 중이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과 영상통화로 외국어를 배운다. 지난해에는 중국어와 몽골어를 배웠다. 올해는 일본어를 지원했다.
정 양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멘토와 웹에서 만난다”면서 “영상통화지만 지연 현상이 없고 발음도 정확히 들려서 외국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굳이 뭍으로 아이를 내보낼 필요가 없다.
임자남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아이패드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안내를 맡은 김삼진 KT 호남권 CSV운영팀장이 웃으며 반긴다. 학교에서 아이패드 활용법을 가르친 게 인연이 됐다.
혹시나 하고 스마트폰을 보니 와이파이가 연결됐다. 옆에 'GIGA'가 뜬다. 서울의 집보다 빠르다.
임자남초등학교는 SW선도학교다. SW코딩 교육도 앞서 준비 중이다. 드론 조종기용 SW를 직접 코딩해 실제로 조작해보는 교육이다. 태블릿PC는 30대를 갖췄다. 한 학년 학생이 10명 미만인 임자남초등학교에서 수업시간마다 전교생이 쓸 수 있다.
학교 건물 2층에는 사물인터넷(IoT) 체험학습장이 마련돼 있다. 공간이 부족해 강당과 복도 자투리 공간으로 나눴다. 복도 한 쪽에는 가상현실(VR)을 이용한 골프 게임과 머리착용형 VR기기(HMD) 등이 구비돼 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때면 아이들끼리 팀을 나눠 골프 게임을 한다.
강당에는 VR자전거 시뮬레이터가 있다. 자전거 두 대를 나눠 타고 게임을 한다. 이날은 김성용 교사(5학년 담임)가 박영찬 군(6학년)에게 져서 응원하던 학생들에게 치킨을 사야 했다.
성향숙 임자남초등학교 교장은 “초고속 인터넷을 도입한 이후 아이들 꿈이 공무원, 의사에서 IT 관련 직종이 늘었다”면서 “올해 신안군 전체에서 두 명뿐인 정보영재 중 한 명을 배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자도 복지관 1층은 기가사랑방으로 꾸며졌다. 한 쪽에는 PC 3대를 뒀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전면에는 80인치 UHD TV에 9.1채널 스피커를 설치했다. 선명하고 큰 화면과 생생한 음향이 영화관 못지 않다. 매주 화요일에는 지역민이 모여 영화를 감상한다. 임자면에서 아예 '문화의 날'로 지정했다.
큰 화면과 초고속 인터넷 덕에 문화강좌도 들을 수 있다. 영상으로 먼저 교육받고 실습한다.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니 어렵지 않다.
박영선 지역아동센터 원장은 이때 배운 냅킨 공예와 북아트로 자격증까지 땄다. 지역 어르신과 학생들에게 가르쳐준다.
박 원장은 “섬이라 강사를 구하기 힘든데 영상통화로 해결했다”면서 “함께 배운 교사들과 방과 후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유돈 할머니(84) 댁을 찾았다. 마을에서 가장 안쪽 집이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잘 걷지 못한다. 방문 위에 달린 동작센서가 할머니를 지킨다. 오전 6~10시 움직임 패턴을 분석해 평상시와 다르면 즉시 담당자에게 연결한다.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벽에 있는 비상벨을 눌러도 된다.
김 팀장은 “센서와 비상벨은 3G망을 이용했다”면서 “올해 안에 임자도의 440여 홀몸노인 가구 모두에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남 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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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N 사업 구축현황 및 향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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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성장기업부(구로/성수/인천)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