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검사를 알아보고자 병원을 방문한 50대 초반의 박모씨는 상담을 하는 동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과거 다른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박 씨의 친구가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내시경이 정 부담된다면 우선 '체외진단 키트'로 대장암 가능성을 판단해 보라고 조언한 것이다.
체외진단 키트라면 당뇨병 환자들이 사용하는 혈당계가 전부인 줄 알았던 박 씨는 대장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키트가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면서도, 이번 기회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체외진단 키트가 존재하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체외진단vs체내진단
우리 몸을 진단하는 방법은 체내(體內)진단과 체외(體外)진단 두 가지로 나뉜다. 체내진단은 몸속을 들여다보며 질병의 원인과 증상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내시경을 비롯해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단층촬영(MRI) 등이 대표적이다.
대장암 같은 경우 조기진단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장 내시경을 사용해 대장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문제는 이를 위해 금식을 하거나 장 세척제를 시간대별로 복용하는 등 준비과정이 고생스럽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체외진단은 혈액이나 대·소변, 침, 가래 등 인체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체액을 통해 체내에 질병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당뇨병 환자들이 사용하는 혈당계가 대표적이지만, 최근에는 세포 및 유전자의 변화를 분석해 다양한 질병을 진단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체외진단의 장점은 준비과정이 필요 없고 체내진단에 비해 검사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다.
다만 질병 여부를 구별하는 정확도는 체내진단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아무래도 체액이라는 간접적 대상으로 질병을 파악하다 보니 정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체내진단의 정확도에 상당히 근접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암·치매 등 다양한 질병까지 파악
최근 UNIST 생명과학부의 조윤경 교수팀이 개발한 체외진단 키트인 '엑소디스크(Exodisc)'는 소변에서 '나노소포체'를 분리해 검출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나노소포체란 우리 몸속의 모든 체액에 존재하는 미세한 생체물질로서 암의 진행이나 전이 과정 등에 관여한다.
따라서 나노소포체를 검출하면 암세포의 출현 여부와 암의 진행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나노미터 크기의 이 미세한 입자들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최근 조윤경 교수와 연구진은 미세입자를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필터를 개발해 나노소포체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성과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그동안 조직검사에 집중됐던 암 진단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암 진단에 소요되는 비용 및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장암 진단에 특화된 키트를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 벤처, 지노믹트리(Genomictree)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대장암 분자진단 키트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임상시험을 무사히 거친다면 내년쯤에는 보다 간편한 대장암 진단이 가능해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혈액으로 심근경색과 치매를 진단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심근경색 진단키트를 개발한 UNIST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의 장재성 교수팀은 혈액 한 방울로 1분 만에 심근경색을 진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심장 근육이 괴사할 때 혈액 속에서 흘러나오는 단백질인 '트로포닌'을 감지하는 기술이 키트의 원리라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KIST는 혈액으로 치매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현재 의료기기 전문업체에 기술이전을 완료한 상황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나노바이오센서 키트'는 아주 적은 양의 혈액만으로도 알츠하이머 치매 여부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 : 김준래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