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장애인은 다가가기 어렵고 비장애인은 다가오는 걸 꺼린다. 소통 부재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결국 벽은 소통으로 허물면 된다.
소통의 기본은 '듣고 말하는 것'이다. 잘 듣고 말하지 못하면 소통이 어렵다. 언어·청각 장애다.
언어와 청각 장애를 가진 농아인은 세상과 소통하려 수화를 배운다. 하지만 수화를 아는 비장애인은 드물다.
농아인에겐 간단한 음식 주문조차 버겁다. 동네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한 그릇 시키는 일도 불가능하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글로 써서 주고받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에게 바깥세상 벽은 언제나 높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손말이음센터는 언어·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는 다리다. 24시간, 365일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해법은 IT다. 농아인은 중계사와 영상으로 대화하고 중계사는 비장애인에게 전화로 해당 내용을 주고받는다.
흔한 영상통화 같지만 선진국에서도 흔치 않은 서비스다. 영상이 끊어지지 않고 잡음도 없이 통화가 이뤄져야 한다. LTE나 3G, 와이파이 등 사용자 통신 상태에 상관없이 품질이 일정해야만 가능하다. 시스템은 국내 중소업체인 코이노가 구축했다. 가까운 일본에서 벤치마킹하러 방문할 정도다.
손말이음센터는 청계천 옆 한국정보화진흥원(NIA) 15층에 위치한다. 센터 안은 여느 콜센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칸막이마다 헤드셋을 낀 중계사가 앉아있는 것도 같다. 다만 말과 문자뿐 아니라 영상을 보며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게 차이점이다.
중계사별로 칸막이를 높게 한 점도 독특하다. 둘이 나누는 대화를 주변에서 볼 수 없다고 안심시키려는 의도다. 영상통화하는 농아인을 배려했다.
취재하는 동안에도 전화가 쉬지 않는다. 하루 평균 2000건이다. 1년이면 73만건에 이른다. 야간 근무자를 제외한 중계사 대부분이 통화 중이다.

손말이음센터 이용자는 대부분 농아인이다. 농아인이 비장애인과 통화할 때 주로 사용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가 가장 바쁘다. 이를 위해 중계사 출근 시간을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탄력적으로 운용한다고 센터 측은 설명했다.
센터를 총괄하는 강공식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물건을 구입하거나 음식을 주문하는 쇼핑이 이용 건수가 가장 많다”면서 “농아인들이 통신중계서비스를 이용해 직접 구매에 나서는 비율이 크게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말이음센터 서비스가 모바일에서도 가능해지면서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스마트폰으로 장소에 상관없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졌다. 게다가 무료다. 비장애인과의 통화료는 센터가 부담한다. 연간 8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영상통화에 따른 데이터 소모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데이터 사용량이 많은 농아인을 위한 요금제를 이용하면 경제적이다. 따로 통역사를 대동해야 하는 상황에도 안심이다. 통역비도 따로 들지 않는다. 해외에 있는 장애인이 국내 비장애인과 통화할 때 더욱 유용하다.
강 연구원은 “와이파이 환경에서는 무료”라면서 “최근에는 취업이나 홈쇼핑 구매 등에도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서비스 이용방법은 간단하다.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손말이음센터' 앱을 내려 받아 설치하면 즉시 사용할 수 있다. 영상통화를 터치한 후 연결하려는 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입력한 전화번호 가입자에게는 '02-107'이라는 번호와 함께 '청각장애통역전화'라는 문구가 뜬다.
“안녕하십니까? 청각장애인분 요청으로 대신 전화 드렸습니다.”
통화가 연결되면 중계사는 청각장애인 요청에 따른 전화통역 서비스라는 사실을 먼저 알린다. 112는 범죄신고, 재난·화재·응급신고는 119, 생활 민원·상담은 110은 익숙하지만 107은 낯설기 때문이다.
중계사는 농아인의 수화를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말을 전해주는 방식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전한다. 중계사가 상대방과 직접 대화하는 것처럼 들린다. 때문에 희로애락 감정을 고스란히 실어 보낸다. 사투리를 흉내 내야 할 때도 있다. 연인 간 은밀한 대화도 중계한다. 때로는 욕설이나 거친 표현도 있다. 물론 중계사 임의로 바꿀 수 없다.
서 영 손말이음센터 매니저는 “수화를 직역해 전달하다 보니 비장애인 쪽에서 오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면서 “통번역기처럼 중계사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쪽이 주고받는 감정은 중계사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음성 통화만 하는 콜센터 직원과 달리 영상으로 통화하기에 더 부담이 된다.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도 있다.
보람은 분명 있다. 중계사 한 명 한 명이 농아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서 매니저는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인 음식 주문 전화라도 농아인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영상으로 느낄 수 있다”면서 “'02-107'로 걸려오는 전화를 꼭 받아 달라”고 당부했다.
디지털복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다](https://img.etnews.com/photonews/1704/940562_20170406122403_461_0003.jpg)
디지털복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물다](https://img.etnews.com/photonews/1704/940562_20170406122403_461_00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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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성장기업부(구로/성수/인천) 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