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개봉된 '아이로봇'이라는 영화가 있다.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등이 등장하는 2035년이라는 영화 배경이 먼 미래로 느껴졌다. 그러나 AI는 벌써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이런 기술이 곧 현실로 된다는 전망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AI 로봇 '도로보쿤'이 일본 도쿄대 입시에 도전하고, 구글 자율주행차가 300만㎞를 무사고로 달리는 기록을 냈다. 우사인 볼트의 신발처럼 '대량 맞춤형'이 아닌 '개인 맞춤형' 신발을 스마트공장이 생산하는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앞으로 18년 뒤인 2035년. 우리는 너나없이 대변혁 시대의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헤쳐 나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과 타 분야 간 융·복합으로 산업 구조와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 변화를 초래하는 기술 혁신의 패러다임이다. 산업 간 경계를 넘어 융·복합을 통해 발전하면서 생산 방식, 제품·서비스 개념, 비즈니스 형태 등에 근본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대변하는 스마트화, 서비스화, 친환경화, 플랫폼화라는 4대 메가트렌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공유가 필수 요소다. 표준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개방과 공유를 현실화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과거 표준화는 시장의 게임 룰을 정하는 도구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울리는 표준화는 시장 생태계 구조를 정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누군가가 정한 룰에 따라 누구나 경쟁 무대에 입장, 시장의 강력한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표준화와 함께 시장 생태계가 정해지고 나면 새로운 기업이 그 생태계의 '키스톤(keystone)'이 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기업의 주요 경쟁력인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표준은 사회 전방위에 걸쳐 다각도로 추진될 것이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로봇, 자율주행차 등 더욱 스마트한 제품이 개발될수록 인간 안전·환경보호 등에 대한 표준이 더욱 중요해진다. 초지능·초연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인터페이스 표준도 요구될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등 국제 표준화 기구는 이미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표준화를 위해 로봇·자율주행·스마트제조 등 기술위원회를 구성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를 모아 국제표준 개발을 진행한다.
국가기술표준원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표준화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 표준화기구에 표준을 제안하고, 국내 전문가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 내년에는 부산에 IEC 총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IEC 총회는 전기·전자 분야의 세계 표준 전문가 2000여명이 참석하는 큰 행사다. 스마트시티, 전기차 등 다양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국제표준화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표원은 IEC 총회 유치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표준의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하도록 산·학·연과 함께 체계적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영화 '아이로봇'에서처럼 우리는 곧 인간과 깊이 교감하는 로봇과 거실에서 함께 살고, 완벽한 자율주행차로 도심을 누비고, 여행도 다니게 될 것이다. 로봇을 만드는 기술과 무인자동차를 제작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른 복잡하고 다양한 기준, 한 차원 높은 새로운 표준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표준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성공으로 이끄는 고속도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협업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도 글로벌 기업과 함께 표준화에 참여, 협업해서 함께 발전하는 국제 표준화 생태계의 핵심 리더 역할을 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강병구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표준정책국장 bgkang@korea.kr
-
변상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