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기본료 폐지, 실현 가능한가

[이슈분석]기본료 폐지, 실현 가능한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통신 8대 정책' 공약을 발표하자 환호와 우려가 엇갈렸다. 통신비 지출이 줄어드는 유권자는 환영했지만 산업계와 전문가는 일부 정책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했다.

핵심 공약인 '기본료 폐지'는 실현 가능성이 낮고 부정적 영향도 클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통신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면서도 통신비를 낮출 수 있는 시장경쟁 활성화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본료 폐지 “세심한 고민 필요”

통신 기본료를 폐지한다는 공약이 전해지자 유권자는 환호했다. 통신비를 매달 1만1000원 깎아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통신과 정보통신기술(ICT), 가계통신비 등 산업과 소비자 이익 전체를 조망하는 균형감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실현 가능할 지 의문이다. 2월 말 현재 사물인터넷(IoT)을 제외한 휴대폰 가입회선은 5517만개다. 회선당 매달 1만1000원을 깎아주면 연간 7조9345억원이다. 지난해 3사 영업이익은 3조5976억원이다. 기본료 폐지는 이통사의 대규모 영업적자로 직결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통사가 기본료 폐지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요금을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후보가 '롱텀에벌루션(LTE) 설비투자가 완료됐으니 기본료를 폐지해도 된다'는 논리를 펴지만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투자가 완료됐으면 회수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LTE 투자는 2011~2013년에 집중됐으며, 지금도 매년 5조원 이상 투자된다.

통신 산업과 ICT 생태계도 고민해야 한다. 통신 3사는 많게는 연간 8조원, 적게는 5조원을 설비에 투자한다. 그 덕분에 세계 최고 유·무선 통신환경을 구축했다. 우수한 인프라에 기반을 두고 세계적 ICT 서비스가 나왔다. 앞으로 5세대(5G) 이동통신에도 투자해야 한다.

통신비 인하를 고민하는 건 좋지만 기본료 폐지 같은 급진적 정책은 통신 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2012년 과도한 통신요금 인하 정책으로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 통신 품질을 기록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와이파이 등 '실용 공약'

문 후보는 기본료 폐지 외에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분리공시제 도입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성과 반영 △데이터요금 할인 확대 △공공 와이파이 의무 설치 △농·산·어촌 슈퍼 와이파이 설치 △한·중·일 로밍요금 폐지를 통신 분야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본료와 로밍요금 폐지를 제외한 6대 공약은 통신 주무부처가 추진해 온 정책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만큼 실현 가능성도 높아 두루 환영을 받는다.

지원금 상한제는 10월 폐지 예정이던 것을 앞당기는 것이어서 무리가 없다. 분리공시제는 휴대폰 제조사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반대하기는 하지만 기형적 국내 휴대폰 유통구조를 바꾸려면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분리공시로 제조사 지원금 규모가 드러나면 통신사가 휴대폰 유통의 98% 이상을 틀어쥔 폐쇄구조를 개방형으로 바꿀 수 있다. 제조사에서 휴대폰을 구입한 뒤 마음대로 통신사를 골라 가입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공기계를 사기 쉬워지면서 유심요금제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 약자 배려…시장경쟁 활성화가 답

기본료와 한·중·일 로밍요금 폐지는 알뜰폰에 생사가 달린 문제다. '저가 요금'이 가장 큰 무기인 알뜰폰은 기본료 폐지가 부담스럽다. 통신비 인하 '1등공신' 대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폐업 위기에 몰리는 셈이다. 외국인 선불유심요금제도 알뜰폰 주요 사업이다. 로밍요금 폐지는 이들에게 큰 악재다. 더욱이 양국 통신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로밍요금 폐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내 여행객이 많은 중국과 일본이 훨씬 유리하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통신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 약자 배려와 시장경쟁 활성화가 꼽힌다.

사회 취약 계층이나 취업준비생 등의 통신요금을 낮춰주는 방안이 거론된다. 통신사는 이미 이런 요금제를 운영하고 있다. 대상이나 할인 폭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려면 결국 시장 참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통신 3사만으로는 경쟁 활성화가 쉽지 않다. 제4 이동통신과 알뜰폰이 단골 해법이다. 알뜰폰 활성화에는 도매 대가 인하, 전파 사용료 면제 등 지원이 필요하다. 통신사도 경쟁을 활성화하려는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기본료가 폐지된다면 통신사업자는 종량 요율을 인상하고 데이터 제공량을 축소하는 등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서 “요금규제 완화, 알뜰폰 사업자 자생력 제공 등 자율경쟁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