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기업구조조정 방식 개편은 현행 채권 금융사 중심 구조조정 체계를 자본시장과 법원에 의한 프리패키지 플랜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나 채권자인 시중은행이 도맡아 오던 구조조정을 민간 자본시장이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구조조정 체계는 시중은행이나 정책금융기관이 기업에 돈도 빌려주면서 부실 우려가 있는 기업을 골라내는 작업까지 일괄적으로 이뤄졌다.
은행 입장에서는 돈을 빌려준 기업이 부실화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고, 기업과 장기 거래관계를 고려하다 보니 신용 평가에서 온정주의가 발생해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기 일쑤였다.
시중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부실화가 진행된 이후에도 대우조선 여신 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다 지난해 들어서야 '요주의'로 낮춘 것이 대표 사례다. 이런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신 구조조정 방안에는 채권은행 주도 구조조정 한계를 인정하고 주체를 민간자본으로 전환하는 실행전략을 대거 포함했다.
은행 내부 신용위험평가위원회에 외부위원을 포함하고 평가모형을 객관적 근거에 따라 선정한다. 또 신용위험평가 담당자에게 면책권 및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지금보다 조속한 시일에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골라낼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부실기업을 골라내면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PEF)가 등장해 해당 기업 채권을 인수하고 시장논리에 맞게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는 게 피플랜의 핵심이다.
은행 등 채권자는 부실 우려 채권을 미리 털어낼 수 있고, PEF는 해당 기업이 조금이라도 건전할 때 채권을 사들일 수 있어 구조조정으로 기업을 살릴 확률이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PEF가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중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매각 과정에서 사고파는 가격 차이로 시간이 지연되지 않도록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를 설립해 가격에 대한 이견이 줄어들도록 중개 역할도 강화한다.
또 정책금융기관 주도로 기업구조조정펀드를 만들어 민간 구조조정 전문기관을 자(子)펀드로 선정해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하고,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보증을 통한 지원도 할 계획이다. 은행도 여신 부실로 건전성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지금도 기업 부실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인 '기업재무안정 PEF'가 45개 운용되고는 있지만 규모가 작아(평균 869억원) 구조조정을 주도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위는 정책금융기관(산은·수은·기은)과 유암코 출자로 5년간 4조원 규모 '기업구조조정펀드'를 만들어 판을 키우기로 했다.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투입하면 민간운용사가 1대1 매칭방식으로 투자하는 구조다. 따라서 총 펀드 규모는 8조원이 된다. 이렇게 정책금융기관과 민간에서 자금을 모은 운용사는 부실기업 채권과 주식을 사들인 뒤 출자전환, 지분투자 등을 통해 경영권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한계도 있다. 실제 시장에서 제대로 운영될지 여부다.
우선 기업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 외부위원을 포함시킨다는 은행의 신용위험평가위원회도 여전히 은행 내에 있어 독립적으로 운영될지 미지수다.
빠른 거래를 위해 매매가격 조정 역할을 할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가 제시한 적정 가격에 강제성도 없다.
구조조정에 참여할 만한 PEF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우조선처럼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을 소화할 수 있는 PEF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신용위험평가 체계 적정성을 엄격히 점검하고 신용위험평가 담당자가 부담 없이 구조조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면책과 인센티브를 적극 부여하겠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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