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15>모바일 청첩장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15>모바일 청첩장

어릴 때 집안에 결혼식이 있으면 어머니는 가장 예쁜 옷으로 입혀 주셨다. 결혼식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대소가(大小家) 어른들이 미소로 맞아 주며 용돈을 주셨다. 설 세뱃돈보다 더 많은 용돈을 챙기는 날이 집안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은 그렇게 모두에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혼주인 부모님은 멀리 사는 분께 전할 청첩장을 들고 우체국에 가셨다. 결혼식에 초대할 친구와 선후배에게는 일일이 만나서 전했다. 청첩장은 결혼 초대장 이상이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청첩장 전달 방식이 바뀌었다. 메시지가 뜨면 신랑신부의 드레스 화보집이 펼쳐지고, 결혼 날짜와 장소 및 시각이 안내된다. 예비부부에게 전달할 메시지도 그곳에다 쓰면 된다. 종이 청첩장에 비해 비용이 절감되고 편리한 모바일 청첩장이 대세다.

아나운서인 후배 L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 공채시험에서 몇 차례나 고배를 들이켰다. 방송 스터디를 함께한 동료인 친구, 선배들은 그때마다 모였다. 힘내라고. 너는 반드시 아나운서가 될 거라고. 그녀가 아나운서에 합격했다. 이후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을 본 친구와 선배는 없었다. 연락을 끊은 것이다. 서운해도 바쁘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녀가 결혼 소식을 전했다. 휴대폰 단체 대화방에 모바일 청첩장이 올라왔다. 아나운서가 된 뒤 아무 연락도 없다가 불쑥 내민 모바일 청첩장이었다. 선후배는 갈지 말지 고민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니 진심으로 축하해 주자.' 결혼식이 끝난 후 그녀는 어떤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지난해 인상 깊은 청첩장 하나를 받았다. 대학원에서 알게 된 후배가 청첩장을 보냈다. 모임에서 가끔씩 보는 정도여서 그녀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다. 청첩장을 전해야 하니 만나자고 했다. 만날 약속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결혼식 날짜랑 장소만 알려 달라 했지만 그녀는 일부러 내 집 앞까지 찾아왔다. 두툼한 청첩장이었다. 청첩장 안에는 따로 손 글씨로 쓴 편지가 있었다. 나를 본 첫인상, 예비신랑을 생각하는 마음, 어떻게 살겠다는 각오까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선물도 들어 있었다. 두툼한 청첩장의 주범은 '마스크팩'이었다. '결혼식 전날, 예쁘게 팩하고 오세요'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15>모바일 청첩장

청첩장에서 결혼에 임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결혼식에 온 하객은 모두 그녀가 준 감동의 청첩장을 받았다. 마스크팩 이야기에 웃음꽃이 퍼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행을 다녀온 그녀로부터 답례품을 받았다. 오색국수였다. 결혼식에 참석한 지인들에게 줄 답례품을 손수 마련한 것이다. 역시 오색국수가 들어 있는 박스 안에 역시 손으로 쓴 작은 메모지가 들어 있었다.

“결혼식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축복해 주신 만큼 행복하게 잘살겠습니다.”

결혼의 계절 4월이다. 무려 청첩장 18장을 받았다. 12장이 모바일 청첩장이다. 시대에 따라 결혼 풍습도 달라지니 모바일 청첩장이 성행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씁쓸하다. 달랑 모바일 청첩장만 휴대폰으로 전달받으면 받는 이의 감정이 무뎌진다. 하루에도 숱하게 쏟아지는 스팸 광고인 줄 알고 무심코 삭제한 적도 있었다.

결혼은 일생에서 가장 큰 행사다. 인륜지대사라 했다. 한평생을 함께할 부부는 양가 집안뿐만 아니라 이웃동네 사람들의 축복까지 받았다.

하객은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날에 '모시는 사람들'이다. 정성과 예를 갖출 때 축복의 무게도 깊어진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스마트폰으로만 끝낼 수는 없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