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똑똑한 에너지 소비자가 되자

[ET단상]똑똑한 에너지 소비자가 되자

“우리는 똑똑한 에너지 소비자입니까?”

길을 걸으면서 뉴스를 챙겨 보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짧은 시간을 이용해 쇼핑을 하고도 늘 시간이 모자란 요즘에 뜬금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에너지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 세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에너지혁명2030'에서 전력회사의 붕괴를 예고했다. 분산형 전원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등장은 전통 전력 사업의 설자리를 좁히고, 결국은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원자력에 대한 사회 불안감이 확산되고,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 가까워지면서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화라는 두 키워드가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흡수하는 혼돈의 시기다.

에너지 소비자에게 이러한 변화는 아직 찻잔 속 태풍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공급자 입장에선 원전을 비롯한 발전시설은 혐오시설로 여겨진다. 신규 설치가 정체되고, 기존 설비는 노후화되는 '대략 난감' 상황이 연출된다.

우리는 이미 에너지 다소비 시대에 살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에너지 사용량이 더 늘어날 것이다. 구글 데이터센터 하나가 원자력발전소 2~3기에 맞먹는 전력을 소모한다. 자동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한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은 후 선반에 올려놓으면 다음 사람이 돌려 보던 절약형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으로 각자 맞춤형 정보를 취한다. 뉴스 기사 한 꼭지는 스마트폰 배터리를 소모시키는데 끝나지 않고 통신회사 중계기의 에너지 사용량을 증가시키고, 포털과 언론사의 데이터센터를 구동시킨다.

이에 반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이 안전하다는 사회 통념은 깨졌고, 에너지 소비자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원을 원한다. 지난해 말 개봉된 원전 사고 재난영화 '판도라'가 관객 수 450만을 넘어선 것은 에너지 소비자가 공급자에게 보내는 무언의 요구이기도 하다.

공급자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소비자를 시장으로 끌어들여서 서로가 윈윈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여기서 소비자의 역할은 에너지를 똑똑하게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과거처럼 '한 등 끄기 운동'은 참는 것이지 스마트한 방법이 아니다. 에너지 혜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똑똑한 방법이다.

에너지 절약 기술이 혁신을 거듭하면서 방법은 다양하다. 적은 전기로 더 밝고 오래 가는 발광다이오드(LED) 전등, 효율 등급에 따른 냉장고와 에어컨 구매, 오피스 빌딩과 공장에서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도입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에너지 다소비 설비를 고효율 설비로 교체한다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에너지 비용 절감에 따른 이익도 챙기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기를 팔아 돈을 벌던 한국전력공사가 에너지 효율을 위한 회사를 설립하는 시대다. 전력회사가 전기를 덜 팔도록 하는 회사를 설립한 것은 역설이다. 그만큼 시장이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에너지 산업 특성상 장기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대형 전력회사의 역할은 필요하다. 그러나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세계적으로 탄소 감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결국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감축은 어느 한 기업의 몫이 아니라 온 국민이 동참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하고 더 효율적이고 더 깨끗한 것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조건이 갖춰질 때 변화는 찾아온다. 이제는 변화를 맞이해 또 다른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변화의 시기에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에너지를 똑똑히 사용하고 있습니까?”

최인규 KEPCO 에너지솔루션 사장 choin16@kepco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