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 & Future]<16>대선 전에 생각해 볼 4차 산업혁명의 역사학

대통령 선거 주자들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 개혁에서 경제 혁신, 복지 혁명에 이르기까지 대격변의 시대를 웅변한다. 내향주의와 포퓰리즘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공통의 하나는 대선 주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대두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시대에 따르는 본류라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까.

올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출판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1883년 카를 마르크스가 망명지인 영국 런던에서 사망한 해에 20세기를 대표하는 2명의 경제학자가 태어났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조지프 앨로이스 슘페터다. 두 사람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영국 출신인 케인스는 20세기 들어 쇠퇴하고 있는 영국 경제의 문제점을 파악, 처방전을 쓰는데 힘을 쏟았다.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려다 보니 거리낌 없이 정치와 손을 잡기도 했다.

[곽재원의 Now & Future]<16>대선 전에 생각해 볼 4차 산업혁명의 역사학

이에 반해 슘페터는 연구실에 머물며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세상을 관찰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오스트리아를 위해서도 교수로 있던 독일을 위해서도 좋은 교수직을 준비해 준 미국을 위해서도 경제학을 쓰지 않았다. 이들이 활약한 1920∼193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전후경제, 대공황 시대인 만큼 현실파인 케인스 경제학이 압도했다. 이른바 뉴딜 시대를 선도했다.

한편 슘페터는 자본주의 본질 연구에 더욱 몰두했다. 슘페터는 1931년에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유행하던 러시아 경제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의 '경제 장기파동설'을 강연하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훗날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이노베이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경제의 큰 파동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전쟁과 혁명 같이 경제 활동의 외부에서 오는 불규칙한 영향, 인구 변동과 같이 천천히 오지만 지속되는 힘, 기술 혁신으로 대표되는 생산 방법 변화 등을 열거했다. 그는 이 셋 가운데 기술 혁신을 가장 중시했다. 그는 “조용한 연못에 큰 돌을 던지면 물결이 일어난다. 그 물결이 계속 퍼져 나가고 있을 때 작은 돌을 던지면 그 큰 물결 가운데 다른 물결이 생긴다”고 경기 순환 분석에서 풀이했다. 이 돌이 바로 기술 혁신이다. 여러 개의 돌을 계속 던짐으로써 거대한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친과 친한 슘페터를 몹시 따른 경영학의 태두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민영화와 마케팅이란 화두를 내놓았고, 1959년에는 지식노동자란 단어를 유행시켰다. '기업주체설' '위대한 혁신' '일과 기술의 경영' 등 그의 저서는 경영학서이지만 슘페터의 이론과 맥락이 닿아 있다. 기술 혁신과 경영 혁신의 접목이다.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을 46년째 운영해 온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은 마르크스-슘페터-드러커를 잇는 비 앵글로색슨계 경제·경영학의 집대성자로 평가할 수 있다. 슈바프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교환 정지, 10%의 수입 과징금 도입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이른바 닉슨 쇼크가 발생한 1971년에 세계경제포럼을 출범시켰다. 전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달러를 기축으로 한 고정환율제를 버리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한 시점이다. 1999년 1월 1일 유럽연합(EU)의 단일 통화 유로화가 생겼지만 이미 1972년에 다보스에서 나온 구상이었다.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EC)에 가맹해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포진하게 된다. 이해 10월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오일쇼크를 일으키며 세계 경제는 크게 요동친다. 슈바프 회장은 세계 경제의 변동을 겪으며 그때마다 시대정신을 정리해 왔다.

슈바프가 주창한 4차 산업혁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부터 이어지는 150년의 시간 축을 갖고 있다. 기술 혁신은 이노베이션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금방 포화되기 때문에 장기 파동을 일으키는 진정한 이노베이션은 사회 시스템 혁신을 수반해야 한다. 미국과 독일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고, 인더스트리 4.0이 중소기업4.0을 거쳐 노동4.0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사를 반추한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