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할인마트, 홈쇼핑, 면세점 등이 자체 결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신용카드 결제 대행을 맡아 온 밴(VAN) 인프라를 걷어 내거나 역할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직(결제)라인을 운용하는 이마트와 같은 형태다.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그동안 밴사로부터 높은 리베이트를 받아 수수료를 보전해 온 관행이 막히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 유통-카드-밴으로 이어지는 국내 카드 결제 시스템의 환경 변화가 예상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농협하나로마트, 홈플러스, 하이마트, GS홈쇼핑 등 대형 유통사와 홈쇼핑사들이 속속 밴 결제 대행을 뺀 자체 결제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카드 직라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마트, 롯데슈퍼, 롯데호텔, 면세점은 이미 직라인을 도입했다.
최근 홈플러스는 삼성카드와 공동으로 '다운사이징 밴'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수의 결제를 하나의 서버로 운영하는 형태가 아니다. 별도의 전용 결제 시스템을 만들고, 밴사가 하는 대행 업무를 거의 다 없앴다. 다만 리스크 관리를 위해 하나의 밴사에 최소 관리비만 주고 운영한다. 코세스가 대행을 맡았다.
다운사이징 밴 시스템이 도입되면 밴사가 대행하던 업무 상당 부분이 생략된다. 그만큼 밴 수수료를 줄이겠다는 목적이다.
농협하나로마트도 직라인 재검토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농협하나로마트는 스마트로 직라인 결제 시스템을 추진하다가 금융위 유권해석으로 개발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논의를 재시작했다. 자체 개발을 검토한다. GS홈쇼핑, 하이마트 등도 자체 직라인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유통사들이 밴 대행 시스템을 걷어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동안 마케팅 비용 명목으로 받아 오던 리베이트가 여전법 개정으로 원천 봉쇄됐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사는 연간 수백억원대 리베이트를 받아 왔다. 결제 건수가 많기 때문에 밴사 입장에서는 대형 유통사가 최대 고객이다. 대행 수수료에서 일정 금액을 뒤로 보전해 줬다.
그러나 리베이트가 전면 금지되면서 밴사에 지급하는 대행수수료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밴 결제 대행을 걷어 내는 대신 카드사와 직결제를 도입하고, 카드사가 밴사에 지급하는 밴수수료 금액에 상당하는 자금을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환원해 달라는 요구다.
카드사 입장에서도 밴 대행 수수료를 최소화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대신 이들 대형 가맹점이 요구하는 방안이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홈쇼핑부터 대형 할인점, 면세점 등 거래 건수가 많은 대형 가맹점들이 카드사와 직라인을 구축하고 제의하는 사례가 상당수”라면서 “카드사도 밴 대행 수수료를 낮추고 이들 가맹점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에 밴사는 대형 가맹점과 카드사 간 직라인 도입은 또 다른 리베이트 제공 행위와 다를 바 없고, 밴사에 시스템 개발만 맡긴 후 대행 운영을 해지하는 대형 가맹점도 생겨나고 있어 금융 당국의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밴사 관계자는 “직라인이 도입되면 밴사 수익은 직격탄을 맞게 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소형 가맹점에 밴 대행 수수료를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면서 “카드사가 직라인으로 절감된 비용을 가맹점 수수료 인하 형태로 보전해 주면 이 또한 여전법 위반 행위”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직라인 도입에 따른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이 명확한 인과 관계로 드러나지 않아 여전법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