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강국, 인재에 달렸다]〈4·끝〉인재 육성-예우 순환 고리 만들어야…전문가 좌담회

우리나라 국가 연구개발(R&D)의 역사는 70년에 이른다. 과학기술은 한국을 변방에서 산업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유독 '스타 과학자'가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과학 인재 예우와 육성에 너무 인색하게 군 것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높다.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과학기술은 결국 사람 손에서 나온다.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성장 시계도 멈출 수밖에 없다. 전자신문은 지난달부터 '과학 강국, 인재에 달렸다'를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게재했다. 마지막 순서로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함께 특별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전자신문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과학강국, 인재에 달렸다' 특집 좌담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강병삼 미래부 국장, 이병권 KIST 원장, 신성철 KAIST 총장,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이호수 SK텔레콤 사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전자신문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과학강국, 인재에 달렸다' 특집 좌담회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강병삼 미래부 국장, 이병권 KIST 원장, 신성철 KAIST 총장,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이호수 SK텔레콤 사장. 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

▲참석자(가나다순)

△강병삼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이상민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이호수 SK텔레콤 ICT 기술총괄 사장

※사회=이호준 전자신문 산업정책부장

◆한국에는 왜 스타 과학자가 없나?

◇사회(이호준 전자신문 산업정책부장)=국가 R&D 70년이다.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과학자에 대한 인지도는 아직 낮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을 통해 고속 성장·발전했음데도 이런 문화와 풍토가 있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진단해 달라.

◇이명철(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우리나라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했는데도 스타 과학자가 없다. BBC가 영국 역사의 대표 인물 100명을 조사한 적이 있다. 19세기 공학자 마크 브루넬이 윈스턴 처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이뤄진 조사를 보면 일반 국민 71.4%가 광복 이후 아는 과학자가 거의 없다. '모른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두 번째가 황우석, 우장춘 박사였다. 제일 마지막을 안철수 의원이 차지했다.

원인의 하나는 과학기술인이 대개 자기 스스로, 혼자서 전력투구하는 습성 때문인 것 같다. R&D에 몰두하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나 국민과의 소통은 미흡했다. 반면에 정치, 경제, 행정 같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는 급격한 경제 발전에 맞춰 국민과 많은 소통을 했다. 성과를 적극 알리는 것은 물론 공감대도 만들었다. 과학기술인이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서 활동해야 한다.

나도 의사지만 3~4년 동안 과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그런데 과학자 서로가 훌륭한 분을 인정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훌륭한 스타 과학자가 있다면 서로 서로 인정해 주는 문화를 과학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근현대 과학기술인의 업적과 공헌을 체계화해서 조명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과학기술인유공자법도 이런 취지에서 출발한 것 아닌가.

◇신성철(KAIST 총장)=우리나라에서 '스타' 기준은 매우 높아졌다. 스타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과 발명이 시대를 뛰어넘든지 국가를 뛰어넘는 수준이 돼야 한다. 우선 우리 과학계가 그 정도 수준의 연구를 하려고 노력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는 업적을 이뤄야 한다.

커뮤니티에서는 잠재력 있는 사람을 계속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히말라야에 가는 건 14좌 거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4좌 거봉은 왜 생겼는가. 산 허리와 중턱이 있기 때문이다. 밑에 있는 사람도 인정해 줘야 스타가 생긴다.

과학을 통해서 사회, 인류에 가치관을 제시하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를 뛰어넘어 어떤 세계의 가치관을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빌 게이츠는 정보기술(IT) 혁명의 선두 주자지만 존경받는 이유는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을 고민해야 정말 수십 년 이후에 한국을 넘어 세계 스타 과학자가 나올 것이다.

◇이호수(SK텔레콤 ICT 기술총괄 사장)=미국에서 존경받는 과학자를 보면 아무래도 산업계의 비중이 높다.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을 산업화하고 실제 쓸 수 있게 만든 사람이 결국 유명해진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 존경받기 위해서는 첫째로 학문 성과를 내야 하고, 그다음에는 기술로 산업에 기여해야 한다. 세 번째로 국민이 직접 도움을 느끼는 성과를 내야 한다. 과학기술자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지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상민(국회의원)=과학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존경은 여전히 높다고 생각한다. 스타 과학자로 내세울 분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또 스타 과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일부 사회 풍토를 보면 거품 성격도 많다.

일시 조작된 이미지나 대중 매체에 의해 과포장된 스타는 오히려 과학기술 발전, 인류 문명에 해롭다. 스타 과학자에 대한 시각 교정이 필요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같은 사람은 몇 백년에 한 번 나온 사람들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현업에 있는 분들도 훗날 평가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건 스타 과학자, 노벨상 수상자가 왜 없느냐고 재촉하는 것이다. 노벨상 받는 게 국가 정책에 놓이는 것은 너무 조급한 발상이다. 노벨상이 과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육성하는 목표가 돼서는 안된다. 그건 부산물이다. 스타 과학자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 쪽에 존경받는 분들을 보면 기술이나 연구 성과로만 평가받지 않았다. 철학, 인류 문명에 대한 시선, 인본주의 등이 다 담겨 있다. 우리도 근본과 기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과학자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조급증 대신 기다려 주는 미덕을 가지면서 연구자가 신명나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과학계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는 분들도 사회 인식 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조사가 있다.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어떻고, 떨어진 사기를 진작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이병권(KIST 원장)=과학기술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시작된 시기는 아무래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시절이 아닐까. 회사가 사정이 안 좋아지면 1차로 축소하는 게 R&D 부문이었다. IMF 때 국가도 그리 한 셈이다. IMF가 닥쳤을 때 연구 쪽은 정년 단축, 정원 강제 감축이 굉장히 많았다. KIST만 해도 20%를 감축했다.

자의 또는 타의로 연구 현장을 떠난 사람이 많았다. 그때부터 '이공계 기피'라는 말이 나왔다. 그후 20년 가까이 여건이 많이 개선됐음에도 여파가 남았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대학 쪽으로 인력 유출도 심했다.

모든 게 환원되진 않았지만 20년 동안 사기 진작 노력은 많았다. 정년도 거의 회복됐다. KIST는 3분의 2가량이 65세 정년을 환원했다. 과학기술연금 역시 도입됐다. 국가 차원으로도 과학기술 투자가 늘었고, 많은 개선이 있었다. KIST에는 대학교수에서 출연연으로 오는 사례도 생겨 났다.

성과주의예산제도(PBS)는 여전히 문제다. 출연연 인건비를 스스로 확보해서 쓰라는 시스템이다. 기관을 맡은 사람은 경비 확보가 당면 과제가 된다. 국가 연구소는 미래를 대비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연구비 확보가 더 중요한 임무가 된다. 연구자는 평가에 목매달면서 생계형 연구를 한다. 이게 전문성, 기관 임무와 어긋나니 출연연 자체가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에 휩싸인다.

사기 진작 차원에서 보면 연구자들이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즐겁게 연구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보다 R&D 역사가 긴 해외 시스템을 보면 연구기관의 기본은 자율성과 책임이다. 우리는 이런 것이 아직 확보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본다. 금전보다도 연구 차원에서의 사기 진작책이 필요하다.

◇신성철=연구 환경은 어떤 차원에서 볼 때 엄청난 발전을 했다. 과거 연구비로 500만원을 받는 교수는 매우 우수한 과학자였다. 지금은 25년 만에 우수 과학자의 경우 그 100배를 받는다. 엄청난 발전이다.

그런데 정책 결정에서는 후진성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결정 과정에서 과학자가 소외되고,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반영돼 시행되길 원한다. 이런 면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역할에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도 아직은 하향식(톱다운) 접근이 많다. 예를 들어 국가 전략 과제를 한다고 할 때 우수 연구자가 상향식으로 제안하고, 정부는 시행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이슈 하나가 전문연구요원 제도다. 병력 자원이 감소하면 어디서 줄어들거냐 따져야 되는데 그냥 전문연구요원 제도에 손을 댔다. 정책의 신뢰가 크게 무너지는 일이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믿고 있던 학생들은 당황스러워졌다.

결정권자가 과학기술 인재가 중요하다는 의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과학자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면서도 실제 결정에서는 반영이 안 되는 상황이다.

◇이상민=결국 정치 리더십의 오류, 결함 때문이다. 정치 리더십에 궁극의 문제가 있다. 그건 조급증이다. 스스로 당당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리더십이 있으면 자세한 것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빈약한데 뭔가 성과는 내야 하고, 그게 과학기술계 압박으로 이어진다. 리더십이 빈약하면 관료들도 그 추세를 맹종해서 따라간다.

대표 예시가 출연연 통폐합 문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툭하면 나온다. 임금 피크제도 실제 절감되는 예산은 수십억원에 불과한데 도입 효과보다 더 큰 갈등만 유발한다. 국회에서 정년 환원을 주문했지만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건 모순이다.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퇴출제도 문제가 있다. 성과는 평가해야겠지만 기준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게 과학기술 현장이다. 자동차를 파는 마케팅 현장이나 물건을 만드는 공장과 다르다. 섣불리 단기 성과를 평가하려는 조급증이 문제다.

톱다운 풍토는 전 부문에 걸친 문제다. 기획재정부가 너무 많은 권한을 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처에서 결정한 것도 별 의미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주 대규모의 혁파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결국 정치 리더십이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비전을 가져야 한다. 예산, 정책 결정, 실행, 평가 전 부문에 걸친 대수술이 필요하다.

핵심은 보상 체계다. 경제적 보상 외에도 명예, 자긍심 같은 보상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런데 경제적 보상은 낮아지면서 자족감을 충족시킬 보상까지 낮아지니까 문제가 생긴다. 경제적 보상이 확실하든지 민간 부문에서 얻을 수 없는 정신·사회적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자율성과 함께 자긍심을 심어 줘야 한다. 인류 문명 발전에 대한 책무, 연구자 임무를 부여하면 에너지가 솟구칠 것이다.

◇신성철=현장 분위기를 가장 저하시키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감사다. 지금의 감사 시스템은 과학자 자존감을 굉장히 떨어뜨린다. 과학계 전체의 1%도 안되는 비리가 전체를 매도하는 식으로 쓰인다. R&D 시스템이 추격에서 도전, 선도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실패도 많이 나온다. 그런데 감사 시스템이 실패를 용인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적어도 이쪽에서는 과학계를 믿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상민=국회 법사위원장을 하면서 느낀 점은 감사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거다. 감사 시스템 역량이 좀 높아져야 한다. 과학기술 임무가 무엇인지를 정립해서 고려해야 하는데 이게 안 돼 있다. 감사 역량을 높이고 학습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과는 내야 하니까 단순히 영수증 짜맞추기를 해서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

◇이명철=한림원이 과학기술 유공자 예우 지원 사업을 위해 설문·실태 조사를 했다. 박탈감을 느끼고 만족도가 떨어지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양하다. 퇴직 후 진로 지원, 평가 결과에 대한 인센티브, 복지 후생, R&D 성과에 관한 것, 근로소득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일단 국정 운영에서 이공계 출신의 참여 비율이 너무 낮다. 과학기술인들이 박스 속에 머물면서 누가 뭔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데 밖으로 나와서 다양한 일을 해야 한다.

의식 교육도 필요하다. 의대에 우수 인재가 몰린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의대 나와서 환자 진료하는 의사는 50%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정부·정책·연구소·기업, 심지어 미디어 분야로도 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우수한 인재 95%가 졸업한 뒤에 환자만 본다. 과학계도 다변화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의식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과학 인재 양성 위한 정책 과제는?

◇사회=정부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단기 성과에 치중하면 조급증이라는 비판을 받고, 중장기에 집중하면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금까지 정책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고, 또 어떤 정책을 펼치면 좋을지 논의해 보자.

◇강병삼(미래창조과학부 미래인재정책국장)=이공계 인재 정책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과학기술원 지원이다. 각 과학기술원이 개별 법을 갖고 있다. 그 정도로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지원한다. 기초과학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진행하는 것은 학부생으로 하여금 R&D 초급 단계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연구 과제 형태지만 거기에 참여해서 주변 기업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자의 태도로 해결을 모색해 보는 거다. 연구 과제 형식이지만 교육의 일환이다.

영재학교와 대학부설 영재교육원도 있다. 그곳을 들어가기 위한 사교육을 조장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도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학부모의 시각이 바뀌어야 하고, 균형 잡힌 인재를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계에는 대학 졸업자 가운데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먼저 산업계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규정해 주면 좋겠다. 기업이 학벌 차별 없이 채용하는 것도 교육 시장을 바로잡는 방법이다.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인재의 수요처라 할 수 있는 기업이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호수=기업은 오늘 다루는 주제의 해법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우선 지금은 면접관이 출신 대학을 거의 따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굉장히 많은 개선이 있었다. 기업이 학교에 바라는 바는 굉장히 많다. 과학기술원 같은 대학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좀 더 열린 학제가 필요하다. 사람이 들어오면 무슨 과, 무슨 계열로 나뉘어 있는데 사회가 다양해진 만큼 좀 더 열린 체계가 필요하다.

온라인공개수업(MOOC·무크) 강의에 좋은 과정이 정말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인공지능(AI) 권위자 강의를 전 세계 25만명이 듣는다. 무조건 전공 교수가 다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 학생이 무크 같은 강의를 듣고, 교수가 문제풀이와 토론을 지도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학제가 많이 바뀌어야 한다.

소프트웨어(SW) 쪽은 경험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100라인, 1000라인 코드를 해봤다고 하는데 현장에서는 훨씬 많은 걸 요구한다. 현장 돌아가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학교에서 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산업계와 연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2학년 이상에는 산업계에 단기 인턴이 아니라 1년 정도 보내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학점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2015년에 겸임교수를 수행해 봤는데 기업체도 문제가 있지만 현실 학교의 제도에서 문제가 있더라. 예를 들어 연구실에 서너 명의 자원이 있어서 기업체에 데려가기 위해 면접을 보면 결국 가장 우수한 인재가 선택되지 않는가. 그러면 교수는 연구실 인재가 빠지니까 난감해 한다.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이런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강병삼=기업이 인재를 구할 때 개별 기업 차원의 노력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업 간 연계를 했으면 좋겠다.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대학 커뮤니티에 요구를 해 달라. 개별 기업과 교수 차원에서 접촉하는 것보다 이게 낫다.

만약에 산업계 1년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데 벽에 부닥쳤다고 하면 대학 본부 차원의 해결을 모색했으면 어땠을까. 개별 교수가 아니라 대학 전체 문제 아닌가. 이런 문제는 집단 전체에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

◇이호수=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해외에는 구글, 애플에 있는 사람이 대학에 가서 1년 가르치고, 다시 그 대학 학생이 기업에 가서 1년 있는다. 산업계 출신 교수가 학생을 뽑는 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잘 아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체도 좋은 학생 뽑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AI 분야에는 학생이 많이 없으니까 우리가 직접 펀딩해서 장학생을 키우기도 한다. 산업체는 학교로 더 다가가서 교수, 학생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

◇신성철=국가 차원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으면 좋겠다. 기업과 대학 간에 미스매치가 있고 온도 차가 있어서 대학이 혁신해야 한다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나왔다. 산업체가 바로 데려다 쓸 수 있는 맞춤형 인력을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만나 보니까 맞춤형 인재가 아니라 기초가 튼튼하고, 협업할 수 있고, 속도를 쫓아갈 수 있는 인재를 원하더라. 그게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다.

융·복합 시대, 초연결 시대, 초지능 시대다. 이제 '전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동안 이공계 교육은 주로 좌뇌 교육이었다. 하지만 창의력은 우뇌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이공계 대학이 전뇌 교육으로 기초 교육을 시켜야 한다. 세부 기술은 기업에서 배울 수 있고, 속도감 있기 쫓아가려면 기초가 중요하다.

협업도 중요하다. 수많은 과정을 혼자서 다 할 수 없다. 협업에도 큰 벽이 있다. 지금까지 교육이 서열 교육이었다. 동료가 다 경쟁자였다. 앞으로는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 파트너로 가르치는 게 매우 중요하다. 팀 기반 프로젝트, 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는 윤리 가치 교육도 필요하다.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악용 사례도 나타날 수 있다. 잘못하면 기술 때문에 디스토피아가 올 수 있다. 윤리 교육 혁신이 대학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회=인재 양성과 과학기술인 예우가 함께 추진돼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고, 앞으로 필요한 정책은 무엇이 있겠는가.

◇이상민=인재 양성 이후도 중요하다. 그래야 생태계가 만들어져서 유능한 인재가 몰려온다. 신나게 열심히 공부하고, 쌓아서 활용하는 그런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그럴러면 보상 체계가 확실해야 한다.

기업, 학교, 출연연 모두에서 구성원이 자긍심을 갖고 현장에서 몰입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 부분이 허술하다. 기업은 몰라도 출연연과 대학은 보상 체계가 미흡한 현실이다.

국가 차원의 정책, 대책이 필요하다. 연구 환경 역시 보상 체계에 포함된다. 임무를 받으면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데 지금은 보고서 쓰기에 바쁘다.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보고서 문화가 너무 만연해 있다. 연구 현장이 만날 보고서 쓰고 기안하느라 바쁘다. 연구자가 몰입하는데 장애나 낭비 요인은 모두 없애야 한다.

고령화 시대로 가고 있는데 퇴직 후 길이 전무하다. 정년 지난 과학자도 얼마든지 더 연구할 수 있고, 교육 현장으로도 갈 수 있다. 정책은 분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분모를 줄이고 있다. 그렇게 하면 당장 성과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투자를 많이 해서 성과를 내야지 투자를 적게 하고 성과를 포장해서는 안 된다.

대학과 산업계 간 미스매칭을 해결하기 위해 교류하는 아이디어는 좋다. 지금 산업계와 학계를 오가는 게 잘 안 된다는데 제도 차원의 문제를 건의해 주면 국회가 앞장서서 해결하겠다.

출연연이 뭘 했느냐는 비판이 있다. 가장 큰 업적은 대학에서 나온 인재를 트레이닝시켜서 각계각층에 배출한 것이다. 대학이 인재를 길렀으면 더 심화하기 위해 출연연에서 훈련받는 것도 좋다. 기업을 가든 학교를 가든 연계성은 강화해야 한다. 시야를 넓혀서 외국에 인는 인재들, 외국인, 유학생도 유인해야 한다.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기발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 정부에 바란다

◇사회=새 정부가 출범했다. R&D, 과학 인재 양성과 관련해 꼭 이뤄졌으면 하는 정책을 제언해 달라.

◇신성철=투자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투자가 연구 분야 중심이었다면 이제 연구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선진국에서 특정 분야가 떴다고 하면 그리로 가는 형국이다. 하지만 경쟁력 있는 연구자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 어떤 분야에 투자하더라도 그 분야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인재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째로 임팩트 중심 투자, 즉 양 극단에 투자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 또는 새로운 부가 가치에 투자해야 한다. 이른바 'U자형 투자'다. 기존에는 새로운 지식도 아니고 부가 가치도 아닌 어중간한 투자가 많았다. 연구자 스스로 기초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든지 기술 혁신을 통해 부가 가치를 창출하든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감사 시스템을 포함해서 장기 투자 시 도전적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새 정부가 이 세 가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는 정책을 펼쳤으면 좋겠다.

◇강병삼=산업계가 공동으로 원하는 인재상을 정의하고, 어떤 사람을 뽑을지 선언해 달라. 대학 발전에도 복선을 깔아 놔야 학과 간 경계 해소, 융합 인재, 기초 교육 강화 같은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 기업, 대학이 따로 가는 정책으로는 대화가 어렵다. 인재 수요처가 나서 줘야 한다.

◇이병권=나라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은 국가 생존 전략이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은데 자원은 없다. 과학기술이 국정의 중요한 축으로 가야 하지만 아직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대학과 출연연도 역할을 다해야 한다. 뇌 과학에 관심이 높지만 대한민국 전문가 모두 합해도 100명이 안 될 거다. 미국에서는 수천명이 하고 있다. 모든 기초 연구를 다 하기 어렵다면 과학기술계의 역량을 잘 모으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호수=미국 실리콘밸리 톱스타들을 보면 모두 대학, 대학원 때 창업했다. 아이디어가 싹 트는 시기에 시작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굉장히 똑똑하다. 학교 다닐 때 여건만 주어지면 새로운 기술과 꿈으로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 정부에서 이런 환경을 지원해 주면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다.

◇이명철=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어젠다를 보면 전반에 걸쳐 필요한 것은 모두 포함돼 있다. 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람 중심의 과학기술이다. 새 정부가 시민사회와 과학기술의 소통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미세먼지, 조류독감 같은 사회 문제를 과학기술계가 잘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는 삶의 질 속에 과학기술이 들어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환경, 에너지 자원, 수자원 문제가 심각하다. 그만큼 과학기술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기한림원도 과학기술인, 정부, 대중, 학생, 연구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겠다. 세계 유명 과학기술자의 강연을 듣는 코리아사이언스위크 행사를 마련한다. 젊은 과학자들이 토론회를 진행한다. 이 행사를 매년 개최하겠다. 이공계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도 기대한다.

◇이상민=국가 정책은 시류에 조급하게 쫓겨다니는 걸 자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와 사회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연구자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특히 인재 육성은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급증과 압박은 금물이다.

학제, 학과 융합은 국회에 가서도 많이 노력하고자 한다. 교육계, 과학계, 산업계 모두 공감대를 끌어내야 한다. 한때 과학계에 몸담은 분들의 확고한 자산을 재활용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회에서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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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