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대'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이 급부상하는 OLED로 들썩이고 있다. 브라운관에서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로 발전한 디스플레이 기술은 액정표시장치(LCD)가 PDP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20여년 동안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OLED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떠올랐고, 스마트폰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LCD에서 OLED로 무게 중심이 완연히 이동하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얇아서 벽에 붙일 수 있고, 접거나 돌돌 말 수 있으며, 유리처럼 투명한 기능을 구현하는 등 기존 디스플레이에는 없는 전혀 새로운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응용 분야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OLED의 첫 발견
OLED 소자를 처음 개발한 것은 당시 미국 코닥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칭 탕(중국명 텅칭윈) 박사와 스티븐 밴슬라이크 박사다. 이들은 유기 저분자에 전기를 흘리면 빛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2층 구조로 된 녹색 발광 소자를 개발했다. 1987년 이 연구를 발표한 논문 '유기전계발광다이오드(Organic electroluminescent diodes)'는 1만4900회 이상 인용, OLED 관련 연구 논문 가운데 가장 많은 인용 횟수를 기록했다.
OLED 소자를 처음 발견한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은 OLED의 확대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가정에는 대형 OLED TV가 등장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OLED가 주류로 떠오른 것은 물론 조명·자동차·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새로운 응용 분야와 스트레처블, 피부 부착형 디스플레이 등 바이오 기술과 결합한 디스플레이까지 연구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2018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OLED가 저온폴리실리콘(LTPS) LCD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기술 성숙도와 생산비용은 LCD가 유리하지만 OLED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면서 LCD를 추격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OLED 상용화를 주도한 것이 이 분야의 연구 후발 주자인 한국이라는 점이다. 초기 연구가 미국·일본·영국에서 활발했고, 시제품은 일본에서 먼저 선보이는 등 주요 원천기술 특허가 대부분 해외에 있지만 실제 상용화를 이끈 것은 한국이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OLED 연구를 시작한 것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다. ETRI 김장주 박사와 정태형 박사가 심홍구 교수 등과 협력, 첫 고분자 OLED 연구 논문을 1994년에 발간했다.
이후 LG화학이 정보전자소재연구소를 설립, 이창희 박사 주도로 국내에서 첫 저분자 OLED 연구를 시작했다. 삼성도 OLED의 성장 가능성을 간파하고 연구에 뛰어들었다. 기업, 대학, 연구소가 뭉쳐 연구물을 공유하는 등 산업화에 속도를 냈다.
2000년대 들어 정부도 OLED를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로 인식하고 여러 국책 과제를 만들어 적극 지원했다. 중기 거점 기술개발 사업, 디스플레이 분야 차세대 성장 동력 사업,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R&D) 사업 등 정부 주도의 국책 과제를 추진해서 이 분야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효과를 거뒀다.
◇한국이 포문 연 OLED 상용 시대
OLED 상용화를 가장 먼저 시도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 파이오니아는 미국 코닥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1996년 자동차 FM 수신기용 OLED 디스플레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유럽 등에서 OLED 상용화 연구를 시작하는 촉매제가 됐다.
파이오니아가 만든 제품은 박막트랜지스터(TFT)를 사용하지 않은 수동구동(PM) 방식의 OLED여서 대형 패널이나 고해상도 구현은 어려웠다. 이후 파이오니아는 1999년 카스테레오용 4색 컬러 OLED 디스플레이를 양산했고, 모토로라 휴대폰용 멀티 컬러 OLED를 공급하기도 했다.
이후 도시바는 2001년 2.85인치 LTPS TFT 기반의 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를 발표했다. 소니는 LTPS 기반의 13인치 AMOLED를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오리온전기가 가장 먼저 OLED 상용화에 나섰다. 2인치 풀컬러 OLED를 선보이는 등 연구에 집중했다.
LG전자는 1998년 3.8인치 천연색 PMOLED를 개발했고, 이듬해 8인치 비디오도형어레이(VGA)급 수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PMOLED)를 개발했다. 삼성SDI는 1998년 2인치대 휴대폰용 OLED 개발에 성공했다.
LG전자는 1997년에 OLED 개발팀을 꾸리고 상용화 연구를 본격 시작했다. 2000년에는 경북 구미에 PMOLED 양산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기술 안정성 문제로 실패를 거듭했다. 이후 소형이 아닌 대형 OLED로 연구 방향을 바꿨다.
삼성SDI는 휴대폰 시장을 목표로 소형 OLED 개발에 매달렸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시작한 OLED 연구가 삼성SDI로 이어졌고, 1997년에 OLED 연구팀을 꾸렸다.
그 결과 1999년 5.7인치 컬러 PMOLED를 개발했다. 100억원대 투자 결정을 내리면서 더욱더 개발 속도를 냈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256 풀컬러 휴대폰용 OLED 양산을 시작했다. 휴대폰 내부창용 1.8인치급 26만 PMOLED도 개발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 PMOLED 양산을 시작하면서 2003년부터 애니콜 듀얼폰 외부창에 PMOLED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PMOLED 생산량은 2002년에 24만개였지만 2003년 500만개, 2005년 2800만개를 돌파했다.
이후 휴대폰 화면이 커지고 PMP, MP3, DMB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기와 콘텐츠 수요가 늘면서 PMOLED의 해상도와 크기 구현 등 기술에 한계가 닥쳐왔다. 국내외 기업은 PMOLED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대형 AMOLED R&D를 병행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기대에 부풀었다.
세계 최초로 AMOLED를 양산한 기업은 삼성SDI다. 코닥 등 원천 기술을 보유한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을 제치고 2007년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소니가 2001년 13.1인치 LTPS AMOLED 시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최초 개발 타이틀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상용화에 성공, 시장 형성과 성장 견인에 주도 역할을 했다.
삼성SDI는 2001년 15.1인치 AMOLED를 세계에 공개했다. 이후 2인치 모바일용 AMOLED 양산을 시작했다. 2009년에는 가수 손담비를 앞세운 삼성전자 '애니콜 햅틱 아몰레드'로 AMOLED라는 디스플레이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2010년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를 발판으로 AMOLED 시대를 본격 열었다.
대형 OLED로 연구 방향을 선회한 LG전자는 LG필립스LCD로 연구를 이관했다. 이후 하부 TFT 기판과 상부 OLED 기판을 전기 작용으로 결합시키는 방전심도(DOD) 방식 중심으로 R&D에 매진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이후 옥사이드(산화물) TFT와 화이트, 컬러필터를 적용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어려움을 돌파했다.
그 결과 2012년 55인치 OLED TV를 발표했다. OLED 연구팀을 꾸린 지 10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후 LG디스플레이는 18인치 롤러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4K 해상도 77인치 OLED TV, 12.3인치 차량용 플렉시블 OLED 등 중·소형과 대형에 걸쳐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세계 시장은 중·소형 플렉시블 OLED가 어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지, 가정에 OLED TV 침투율이 얼마나 빨라질지 주목하고 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이 OLED 생산에 뛰어들었고, 한국에 선두를 뺏긴 일본도 OLED 생산을 준비하고 있지만 공정 기술 노하우 등에서 상당한 기술 격차가 있어 쉽게 따라잡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창희 서울대 교수는 “LCD 기술이 성숙하는데 30여년이 걸렸지만 OLED는 불과 10여년 만에 R&D 수준에서 상용화까지 도달했다”면서 “기술의 어려움으로 일본이 포기한 상용화를 한국이 성공한 것은 특유의 근성과 끈질긴 노력, 적기에 정부가 적극 국책 과제로 꾸려서 지원한 효과가 컸다”고 평가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