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녹색성장이 아닌 기존 산업과 에너지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국제협약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빠지면서, 감축활동 실효성 문제와 함께 협정 자체가 존폐기로에 놓였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탄소 배출량 2위 국가이면서 세계 외교협약을 주도해온 미국이 빠지게 된다면, 협정의 의미는 물론 실효성마저도 크게 퇴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200여개국이 서명한 파리협정이 지난해 11월 발효된 지 불과 반년 만에 없어질 위기에 빠진 셈이다.
미국은 파리협정 체결 당시 이를 주도한 국가 중 하나인 데다 '녹색기후펀드(GCF)'이행금과 유엔 기후변화 사무국 운영비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담당하고 있어 당장 미국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 변화 이론을 믿지 않는 스콧 프루잇을 올해 초 파리협정 관련 주무 부처인 환경보호청(EPA)의 수장으로 앉힐 때부터 미국의 탈퇴는 기정사실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데다 지난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각종 기후변화 협정을 '중국의 사기극'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탈퇴로 중국과 인도 등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도 자국 내 기업들로부터 상당한 탈퇴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8위권 온실가스 다배출국인 우리나라 역시 온실가스 감축활동에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반대 움직임이 우려된다. 국무조정실은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에 따른 파장과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부처 회의를 오는 5일 열 예정이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예고됐던 수순이었다. '미국 우선'을 부르짖는 전략으로 승리를 거둔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에게 빚을 갚아야만 하는 처지다. 여기에는 자동차 기업과 에너지·건설·군수 업계가 포함된다.
실제로 석유 재벌과 민영 발전소, 중공업 분야 기업들은 파리협정 이행을 공공연히 반대하며 뒤로는 새 정부에 끊임없이 압력을 넣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부와 권력에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에너지 기득권층은 외곽뿐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에도 곳곳에 포진했다.
국무장관이 바로 석유 재벌인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이고, 여당인 공화당 재정에 석유 재벌인 코흐 가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석유 부호인 록펠러 가는 이미 미국 상층부와 얽혀 모든 결정 구조에 관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기업뿐 아니라 핵심지지층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동부 산업 지대)'의 일반 노동자들에 약속했던 굴뚝 산업 부흥을 이루려면,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석유·석탄 소비량을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스캔들과 각종 국정과제 좌초로 사면초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중공업과 건설업 등의 부흥을 통한 경제 발전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유지할 마지막 카드라는 점이 이번 선택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로 전 세계 온도가 한계선을 넘어서는 위험한 수준까지 상승하는 것을 막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과학자는 미국의 탈퇴 결정으로 매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매년 최대 30억톤 가량 추가로 배출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해가 갈수록 배출량이 쌓이면, 빙산이 더 빨리 녹고 해수면 상승과 더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