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컴퓨터는 언제 오지?”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미국과 러시아 간 우주경쟁이 치열하던 냉전시기,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 흑인여성들의 숨겨진 활약상을 그렸다. 백인 그리고 남성이 주류인 그곳에서 흑인여성이 달고 있는 직함은 바로 전산원, 영어로 컴퓨터(Computer)다.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필요한 복잡한 계산과 검증을 사람 힘으로 해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헌했다.

NASA가 IBM을 도입하면서 인간 컴퓨터 역할은 곧 우리가 매일 쓰는 기계 '컴퓨터'로 대체된다. 영화에서도 자연스럽게 흑인여성이 속한 '유색인종 전산부'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반세기도 더 지난 과거 일이지만 인공지능(AI)과 자동화, 모바일 비대면 채널 발전에 일자리 걱정을 하는 현재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흑인 여성이기에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계약직에 화장실까지 차별 받던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을 습득해 상황을 반전시킨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전문인력으로서 좀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현재 '컴퓨터'가 사람 영역을 대신하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재 수요는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일자리 소멸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삶과 직결된 경제활동 수단을 AI·로봇에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국 결과는 막연한 미래 일로 여기던 상상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체감케 했다.
기업이 구성원에 대한 인건비를 비용으로만 여기고 새로운 기술로 대체하려는데 따른 진통도 적지 않다. 공장은 인원을 감축하고 은행은 오프라인 점포를 줄인다. 기술 혁신과 효율성이라는 수사를 앞세우지만, 이익을 좇는 경영논리 앞에 양질의 일자리 고민은 설자리가 좁다.
17세기 산업혁명 시대도 기계에 저항하는 '러다이트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기력한 저항 보다 신기술을 다루는 사람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업 역시 단순 비용 절감 차원 접근으로는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열릴 새로운 시장과 없어진 것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