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과 카드사가 공익 목적으로 공동 출자한 기업에 수년간 출자사 임원이 순번을 짜 돌아가며 재취업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주주가 경영일선에 참여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해도 제대로 인사 검증 조차 없이 금융회사 퇴직인사가 거쳐가는 '회전문' 역할만 하고 있다. 해당 기업 직원 불만도 커지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공동으로 지분 출자한 H사는 수년째 은행 임원이 별다른 인사 검증 없이 대거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업은 현금수송과 자동화기기 관리 업체로 우리·신한·IBK기업·KB국민은행 등이 출자해 만든 공익 목적 기업이다. 은행 부수 업무를 선진화하고 소비자 금융서비스 개선을 위해 출범했지만 현재 자본잠식 상태다.
최근 H사 최대 주주인 비은행 기업 한 곳이 경영권 참여를 선언하며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지분을 보유한 은행이 보이콧하면서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이들 은행이 출자회사를 수익 내실화 보다는 자사 퇴직임원 재취업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기 3년 이상, 억대 연봉을 보장하고 재취업 임원 수까지 은행 간 짬짜미한다.
실제 재취업한 상당수 전직 임원 은행은 전담 업무가 없거나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H사 관계자는 “독립기구인 이사회가 있지만 임추위(임원추천위원회) 등을 통한 인사 심사는 전무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기업은 2000년대 초반 100억원대 매출을 올렸지만 2015년 적자전환하는 등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당시 국책은행이던 우리은행까지 지분참여를 했지만 제대로 된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7개 카드사가 공동출자해 만든 C사도 마찬가지다.
C사는 신한·삼성·KB국민·하나(옛 외환) 등 7개 카드사가 1999년 공동 출자해 만든 밴사다. 영세가맹점 수수료 관리 등 일종의 공공 밴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공익형 기업이다.
C사 대표는 카드사 임원이 3년 단위로 순번을 정해 맡는다. 이사회도 독립적인 인사 권한이 없다. 올해 상반기까지 옛 외환카드 출신 임원이 대표를 역임했고 지난 3월 신한카드 전 부사장이 대표로 부임했다.
지난해 산업은행 등 공기업 자회사 낙하산 인사가 전면 금지됐고 금융권 인사 정화작업도 진행 중이지만 이 회사는 이런 상황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밴업계는 카드사가 사실상 C사 인사권으로 소비자 서비스 개선보다 카드사 관리비용 절감에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카드사와 밴사 간 이익이 상충될 때 카드사 홍위병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C사 관계자는 “일부 부정적인 여론이 있는 것은 맞지만 지분을 보유한 주주 간 협의로 결정된 만큼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