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1>대박 연구를 만드는 연구 환경

[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1>대박 연구를 만드는 연구 환경

오후 2시. 연구소 운동장이 썰렁하다. 근무 시간이기 때문에 모두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낮에 운동하거나 잡담하는 연구원은 감사 대상이라는 대답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한다. 이렇게 통제되고 정제된 환경에서 창의 연구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더욱이 늘 정량 실적에만 매달려 있는 연구원에게 질 높은 연구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연구'를 하는 선진국 연구원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연구 환경의 열악함을 금방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1>대박 연구를 만드는 연구 환경

모든 연구는 당연히 결과의 성공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실패를 통해서는 실패의 반복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연구 과정에서 습득한 기초 이론은 다른 연구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대박 연구' 하나로 모든 투자가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다. 국책 연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대박 연구를 위한 전제 조건은 연구 분위기와 연구원의 자긍심이다. 자유로운 시간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연구하고, 결과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는 자율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사실 '연구하는 사람은 눈떴을 때 연구 주제를 생각하고, 잠잘 때는 해결 방법을 꿈꾸다가 이혼 당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연구에 대한 금전 보상이나 작은 칭찬보다도 만족스러운 연구 환경이 연구원의 열정을 끌어내고 대박 연구의 지름길이 된다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연구소의 연구 체계와 관리 체계를 이원화해야 한다. 연구원은 연구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기타 관리 업무로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연구원이 지나치게 일찍 프로젝트 관리 업무에 투입돼 연구 전문성이 퇴색하는 경우가 많다. 대형 과제를 만들어서 연구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연구원으로 하여금 과제를 종합 관리하게 하고 젊은 연구원은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이원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연구원의 조로 이유는 바로 관리 업무 조기 투입에 있다.

[정태명의 사이버 펀치]<21>대박 연구를 만드는 연구 환경

연구 포트폴리오를 적용해야 한다. 국책연구소는 정부가 제시하는 연구를 절반 정도로 제한하고, 연구소와 연구원이 자체 제안하는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 요구된 특정 연구에만 몰입하는 것은 흉내만 낼 뿐 대박 연구와는 거리가 멀다. 구글의 에릭 슈미츠가 제안한 70대 20대 10 제도(핵심 70%, 관련 연구 20%, 신규 연구 10%)로 구글을 성공 기업이 되는 데 일조했다면 연구소가 기획하는 포트폴리오가 대박 연구의 기초로 작용할 것이다.

국가 연구의 지속 발전을 위한 인력 양성은 대학과 연구소의 몫이다. 대학이 연구소와 함께 공동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학·연·산 협업을 통해 창의 연구 수행은 물론 인력 양성의 물꼬를 터야 한다. 연구 과제 참여, 인턴십, 공동 연구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연구소와 대학이 함께 연구하는 협력의 폭을 확대해야 지속 발전이 가능하다. 글로벌 연구소 및 해외 대학과의 협력 교류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국가 연구소마다 분야와 전략이 다르겠지만 대박 연구의 기본 틀은 동일하다. 경제학, 인문학, 공학, 예술학을 막론하고 창의의 실용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자원은 연구원이다. 연구원이 자긍심과 열정으로 일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을 대학과 협력, 이원화된 연구 결과 관리와 확산으로 풀어 나가면 곧 “심 봤다”라고 외치는 연구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