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기념행사에서 '탈(脫) 원전'을 공식화했다. 미세먼지 대책의 일환으로 '탈 석탄'을 발표한 후 에너지 분야의 두 번째 탈 선언이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문 대통령의 탈 원전 선언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렇다 할 비축 자원 없이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나라가 원전과 석탄이라는 두 개의 에너지 축 없이 지속 가능하느냐가 쟁점이다.
◇2030년까지 9600㎿ 대체 발전원 확보해야
문 대통령의 탈 원전 정책 핵심은 앞으로의 신규 원전 건설 불가다. 계획대로라면 현재 가동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신고리 원전 4호기(설계 수명 60년)가 내년에 가동된다고 가정할 때 2078년이면 우리나라는 원전 제로 국가가 된다. 새 정부는 원전 빈자리를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로 메꾼다는 전략이다.
원전을 줄여 나가는 동안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만으로 국가 전원 믹스를 구성할 수 있을까. 에너지 업계의 반응은 씨늘하다. 국민 안전을 위해 원전과 석탄 발전소 가동을 멈추지만 전력 부족으로 인한 또 다른 안전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탈 원전을 준비할 시간 여유도 많지 않다. 2030년 이내에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설비만도 12기로, 약 9600㎿ 전력이 13년 뒤에 계통에서 빠진다.
탈 석탄 기조까지 가세하면 전력 계통의 부담은 더 커진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원전 설비용량은 2만3116㎿, 석탄은 이보다 많은 3만1583㎿다. 국내 전체 발전소 용량인 10만9493㎿에서 원전과 석탄이 차지하는 비중만 5만4699㎿에 이른다. 나라의 기초 전력을 담당하는 에너지원 두 개를 동시에 중단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당장 우리나라 건설·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사업당 2조~3조원에 이르는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가 사라진다. 철강, 자동차, 화학 등 대형 유틸리티라인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전통 제조업은 생산 단가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은 전압 안정성 등을 걱정해야 한다.
일자리 부문도 대책이 필요하다. 고리 원전에만 종사하는 인력만 해도 한국수력원자력 직원 1515명과 한전KPS 등 33개 회사 1415명을 합쳐 2930명에 이른다. 옆에 위치한 새울 원전본부에는 1860명이 근무한다. 이들 일자리가 단계별로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 어디까지 가능한가
탈 원전과 탈 석탄을 언급하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안은 천연가스 중심의 기저발전과 신재생에너지 보조다. 새 정부 역시 탈 원전 정책의 해법으로 이를 내세웠다.
천연가스+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앞서 탈 원전 정책에 사회 합의가 필요하다. 새 정부가 건설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는 오히려 지역 주민과 기업 사이에서는 건설 중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때문인지 새 정부는 탈 원전 정책을 밝히면서도 신고리 5·6호기 결정은 뒤로 미뤘다.
탈 원전에 따른 사회 비용 증가는 피할 수 없다. 천연가스는 셰일가스 열풍으로 연료 단가가 하락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외다. 실제로 이달 한국가스공사가 들여오는 미국 사빈패스 셰일가스 가격은 열량 단위 기준인 MMBTU당 8~9달러 수준이다. 그동안 도입한 중동산 가스가격(9~10달러)과의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 현지 헨리허브 셰일가스 가격은 3~3.5달러 수준이지만 국내까지 들여오는 운송비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원전을 대체할 물리 형태의 공간에 한계가 있다. 1000㎿ 전기 생산에 원전은 여의도 10분의 2 면적이면 된다. 태양광은 여의도 15배에 이르는 부지가 필요하다. 2030년까지 수명이 다하는 12기 원전 9600㎿, 최근 조기 폐기가 결정된 10기 석탄화력 3300㎿까지 약 1만㎿ 설비를 대체하는 데에만 여의도 면적의 150배에 이르는 부지가 요구된다.
신재생에너지 경제성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하면 해당 인증서(REC)를 원전 및 석탄화력 사업자가 구매한다. 결국 원전과 석탄화력 사업자가 줄면 REC 구매자는 사라지고, 신재생에너지 사업자는 관련 수익을 모두 전력 시장에서 확보해야 하는 구조다.
에너지업계는 탈 원전에 따른 감축 가능한 원전 숫자와 전기요금 인상 수준 등은 후차 문제로 본다. 원전과 석탄 없이도 안보 차원에서 국가 에너지 수급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원전 부작용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이를 정지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사회 파급력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탈 원전 정책에서 자원 가격 상승 대책 등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에 대한 검토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