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 'e나라도움'을 개통한다. 지난 1월에 일부 기능을 가동한 데 이어 핵심인 국고보조금 중복·부정수급 차단 기능을 추가, 완전 개통한다.
정부는 e나라도움 개통이 “재정사에 큰 획을 긋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보기술(IT) 기반으로 국고보조금 누수를 차단, 재정 운용 효율화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그만큼 그동안 국고보조금 관리가 크게 허술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고보조금은 '눈먼 돈'
최근 감사원은 중소기업 관련 정부기관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 사실을 적발했다.
중소기업 중국 진출을 위한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차이나 하이웨이' 사업의 보조 사업자인 이 기관은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 컨설팅 업체를 선정했다. 이후 제대로 된 검토 없이 관련 사업 계획을 승인, 6억원의 국고보조금를 내줬다. 사업에 참여한 8개 기업은 국고보조금 일부를 컨설팅 업체로부터 받는 수법으로 자금을 가로챘다.
이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국고보조금의 부정 수급 적발 소식은 몇 달이 멀다 하고 들려온다. 적발되지 않은 크고 작은 부정 수급 역시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동일한 사업임에도 서로 다른 기관에서 보조금을 타 내는 중복 수급까지 더하면 연간 60조원의 국고보조금 가운데 과연 얼마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국고보조금이 '눈먼 돈'으로 불려 온 이유다.
국고보조금의 부정·중복 수급이 빈번한 것은 관리 부실 때문이다.
중앙 부처 기준의 국고보조금 사업은 약 2000개다. 2000개 사업이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내려가면 약 7만개 사업으로 나눠진다. 지자체 1개 과에서 수십개까지 보조 사업을 담당하면서도 마땅한 관리 시스템이 없어 수기(手記)로 집행·정산·사후관리를 수행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고보조금 집행 주체가 각 부처에서 지자체, 위탁 공기업 등으로 내려가면 관리가 제대로 안 돼 중복·부정 수급을 걸러 내기 어렵다”면서 “수기에 의존해 온 것도 관리 부실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누수, IT로 원천 봉쇄
정부가 국고보조금 누수를 완전히 방치해 온 것은 아니다. 보조사업자 감시·관리를 강화하고, 감사원 등이 수시로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관리 체계 자체가 부실, 부정·중복 수급을 제대로 막을 수 없었다.
정부는 2014년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종합대책'에서 “보조금의 부정 수급을 막으려면 개별이나 일시가 아닌 체계화·항구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차원에서 e나라도움 구축을 추진했다. IT를 활용해 국고보조금 전 업무를 통합·관리, 중복·부정 수급을 원천 차단한다는 목표다.
기재부는 지난 1월 e나라도움을 1차 개통했다. 보조금 교부·집행·사업관리 기능을 가동했다. 다음 달에는 핵심인 중복·부정 수급 검증과 정보 공개 기능을 추가 가동하며, 시스템은 완전 개통된다.
모든 국고보조금 사업을 단일 시스템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보조사업자·수급자 선정 이전에 자격, 중복 신청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자금 지출 이전에는 지출 증빙 허위, 중복 사용 여부를 확인한다. 민간 보조 사업자의 지출은 통합계좌 예탁 후 실거래 발생 시 거래처에 직접 이체하는 방식으로 한다. 사업 수행 이력, 보조 사업자와 거래처 간 관계, 신용도 변화 등도 분석해 부정 수급을 방지한다.
이석균 기재부 e나라도움 구축추진단 시스템구축팀장은 “국고보조금의 부정·중복 수급을 막기 위해 99개 패턴을 개발했다”면서 “과거 부정 수급 전력은 있는지, 기업 신용 등급이 갑자기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보조 사업자와 거래처가 가족 관계는 아닌지 등을 점검해 점수화해서 점수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위험 등급으로 분류해 검증하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시스템 정착, 현장 감시 강화는 과제
다음 달 e나라도움이 완전 개통되지만 해결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최우선 과제는 지자체 등 현장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도록 하는 일이다. 수기에 익숙한 현장 업무 방식을 단기간에 IT 기반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송언석 전 기재부 2차관이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관계 종사자, 보조사업자가 변화된 업무 방식을 적극 수용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기재부는 업무 관련 문의를 받는 콜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실무자 교육에도 역량을 모으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시스템을 직접 이용해야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면서 “각 부처와 지자체 실무자 교육이 현재로선 가장 큰 과제의 하나”라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관련 정보가 하나의 시스템에 집중되는 만큼 보안 강화도 과제로 꼽힌다. 국고보조금 사업 관련 기관·개인 정보가 유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최근 '개인 정보 보호 및 오·남용 방지'와 '시스템 연계 및 보안 강화'로 구성된 e나라도움 운영 계획을 확정했다.
조규홍 기재부 재정관리관은 “시스템 위탁 운영 기관인 한국재정정보원과 다른 연계 대상 기관이 개인 정보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복·부정 수급 방지를 시스템에만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시스템 운영 초기에는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현장 감시를 지속 강화하는 한편 시스템에 오류가 없는지 철저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는 국고보조금 중복·부정 수급 차단뿐만 아니라 개인·기업에 효과 높게 보조금을 전달하는 것 역시 시스템 운영으로 해결할 과제라고 밝혔다. 적정한 자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일 방침이다.
윤병태 기재부 e나라도움 구축추진단장은 “대다수 국고보조금 사용자는 선의의 목적을 두고 있다”면서 “국고보조금 관련 정보를 잘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개인 상태, 관심 사항 등에 따라 보조금 정보를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