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시대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현존 컴퓨터 한계를 극복할 양자컴퓨터가 수년 내 상용화를 앞뒀고 이에 따라 붕괴 위험에 직면한 디지털 암호체계를 대체할 양자암호통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세계를 선도할 기회를 잡은 국내 양자 업계에 초기 시장 창출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양자컴퓨터, ICT '파괴자'이자 '구원자'
양자정보통신 산업 핵심은 양자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현존 컴퓨터 기술은 '무어의 법칙' 한계, 즉 반도체 집적도가 증가함에 따라 노이즈 현상도 심해지는 '터널링 현상'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반도체 회로가 더 이상 얇아질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면 컴퓨터 성능 향상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는 '나노 기술 한계'이기도 하다.
양자컴퓨터는 양자 '중첩'과 '얽힘' 현상을 이용해 컴퓨터 성능 한계를 극복한다. 양자 비트(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0이나 1 어느 하나로만 존재하는 일반 컴퓨터 비트보다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항상 많다. 큐비트 수가 늘어날수록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이는 곧 계산능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다룰 수 있는 큐비트 개수가 늘어나면 양자컴퓨터 성능은 현존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IBM 등은 수년 내 50개의 큐비트를 다룰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양자컴퓨터가 현실화하면 당장 위협을 받는 것이 현존 디지털 암호체계다. 이 암호체계는 소인수분해 문제 풀이의 난해성에 기초하는데 1994년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쇼어 알고리즘'이 등장하면서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쇼어 알고리즘은 양자컴퓨터로만 실행할 수 있는 수학 공식 같은 것으로 슈퍼컴퓨터로 수천년이 걸리는 소인수분해도 몇 시간이면 풀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전혀 새로운 보안체계가 필요하게 되고 대안으로 유력한 기술이 양자암호통신이다. 이 기술은 원하는 정보를 암호화해 일반 통신망으로 전송한 뒤 이 암호를 푸는 열쇠를 빛 알갱이(광자=빛의 양자) 한두 개에 실어 보내는 방식이다. 중첩성, 비가역성, 복제불가능성 등 양자의 독특한 성질에 의해 최소한 이 구간에서는 정보 탈취가 불가능하다.
◇현실로 다가온 양자 상용화
양자는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를 가진 입자를 말한다. 빛을 잘게 쪼개나가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광자가 양자의 일종이다.
양자 존재는 100여년 전 알려졌지만 나노보다도 작은 미시세계라 다룰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를 다룰 수 있는 광 기술이 발달한 현재 본격 상용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꿈의 기술인 양자컴퓨터도 상용화가 머지않았다. 유사 양자컴퓨터는 판매되고 있다.
구글은 네이처 기고문에서 '하이브리드' 방식 양자컴퓨터를 5년 안에 상용화하겠다고 밝혔다. 양자 특유 불안정성 때문에 상용화에 10년 이상 걸리는 디지털 방식 대신 하이브리드를 채택해 기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3월 초 IBM은 범용 양자컴퓨터 'Q'를 상용화한다고 발표했다. 계산 전용의 제한된 성능이 아니라 제약이나 금융, 보안, 인공지능 등에 널리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범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만 성능은 아직 부족하다. IBM은 현재 5큐비트인 시스템 성능을 수년 안에 열 배인 50큐비트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더욱 상용화 속도가 빠른 것은 양자암호통신이다. 사실상 당장 상용화를 해도 무리가 없을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수 국가에서 상용망 적용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이 세종시 롱텀에벌루션(LTE) 상용망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했고 KT는 지난해 자사 상용망에 시범 적용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2000㎞ 양자암호통신망을 구축했으며 영국 브리티시텔레콤과 네덜란드 KPN 등이 상용망 시범적용을 앞뒀다. 미국 AT&T도 최근 상용망 시험 계획을 발표했다.
◇초기 시장 창출 '과제'
전문가들은 양자산업을 선점하는 국가가 향후 ICT 패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정보의 생성과 저장, 전송 모든 분야에서 양자기술을 사용하면 처리능력과 보안 면에서 월등한 장점을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의 압도적 성능으로 빅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에서 앞서나갈 수 있고, 이를 클라우드로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상용화가 임박한 시점에서 기업에 필요한 것은 초기 시장이다. 안전성을 검증하고 적용 실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양자암호통신은 보안의 특성상 실적이 많을수록 시장에서 인정받기가 수월해진다.
국내에서도 정부 주도 초기 시장 창출을 위한 양자 국책과제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더이상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커지는 시점이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