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 & Future]<25>과학기술정책을 보는 새로운 시각](https://img.etnews.com/photonews/1707/969954_20170702144825_282_0001.jpg)
문재인 정부가 펼칠 과학기술정책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연구개발 예산 모습이 드러났다. 정부가 지난주 총리주재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내년에 14조5920억원을 주요 연구개발 사업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1.3% 느는 데 그쳤지만 내용을 보면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중시가 역력하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핵심정책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기술 등 4차 산업혁명분야 예산이 1조5230억원, 연구개발 기반의 일자리 창출위한 예산이 9320억원으로 올해 보다 각각 25.6%, 19.9% 증가한다. 기초연구 예산도 15.6% 늘어난다. 증가율이 두 자릿수인 1조원 안팎의 굵직한 예산들이다.
2010년대 들어오면서 '과학기술예산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매년 두 자리 수 증가를 유지한다' 는 불문율이 깨졌다. 최소한 정부예산 증가율보다 높게 지켜온 성역도 무너질 참이다.
정권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를 가늠할 때 가장 우선시 해온 지표는 과학기술예산 증가율이었다. 이것이 정체기엔 들어 간 지금은 과학기술심의회에서 결정하는 주요 연구개발사업 방향과 사업 과제를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정책입안자는 바둑에 비유하자면 과학기술 판짜기 포석(방향)과 국면 운영의 행마(사업)를 조화롭게 아울러야하기에 한층 전문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여기에 최근 들어 과학기술정책 환경을 뒤흔드는 몇 가지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우선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지구적 규모의 기술혁명과 사회변화다.
앞으로 정부 과학기술 정책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을 받쳐주는 첨단 기술 경쟁력을 파악하고 종전과 다른 돌파형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우리가 혁명의 키 플레이어가 아닌데다 기술혁신이 너무 빨라졌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로드맵을 실행하는 주체에 역할과 권한을 제대로 부여하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 입구로 진입하는 것은 기술혁신과 스타트업 몫이다. 출구를 성공리에 빠져 나오는 것은 기업과 출연연구기관, 대학 몫이다. 출연연은 터널 속 가장 깜깜한 곳에 위치한다.
정책은 입구를 든든히 하면서 편안한 출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입구와 출구가 이음새 없이 이어질 때 4차 산업혁명의 과학기술산업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18 회계연도 과학연구 예산을 대폭 감축한 것도 눈길을 끈다.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과학기술보좌관도 아직 임명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경시하는 배경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미국 사회 인식변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세기 미국 사회는 과학 발전에 의한 산업 발달로 생활이 윤택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많은 미국인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정보, 금융, 인재 네트워크화와 글로벌화가 일어나면서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상업적 성과가 투자에 비해 미흡한데다 과학기술이 빈곤과 환경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이 과학을 불신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이 한국의 사회적 과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과학자만의 상아탑에만 머문다면 미국 같은 과학기술 예산 감축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학기술 경시 영향으로 미국 과학기술정책은 이제 동부중심에서 서부로 옮겨갈 전망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부에서 MIT가 연방정부에 과학기술 관련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부에선 스탠포드대학이 주변 연구개발과 벤처 캐피털을 겸비한 창업형 연구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국은 세력 약화를 우려하는 동부 과학기술계와 접점을 확대할 수 있고, 입김이 강화되는 서부 산업기술계와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연방정부 주도로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해온 전후 '맨해튼 체제'로부터 탈피하려는 미국의 새로운 시도도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 kjwon5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