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정상원과 박재환, 스위치와 '젤다의 전설' 프리투플레이를 말하다

정상원 넥슨 부사장과 박재환 나날이스튜디오 PD가 만났다. 정 부사장은 넥슨 게임 개발을 총괄한다. '택티컬커맨더스' 등을 주도하며 한국 게임 산업을 이끈 1세대 개발자다. 박 PD는 지난해 '샐리의 법칙'으로 이름을 알렸다. 구글이 주최한 인디 게임 페스티벌에서 톱3에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에 열린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포럼'에서 '샐리의 법칙'을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소개했다. 현재 일본 회사와 협력, '샐리의 법칙'을 스위치용으로 개발한다.

1세대 개발자(정 부사장)와 신진 개발자(박 PD)는 닌텐도 스위치와 '젤다의 전설'이 이용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로 △현실 한계를 뛰어넘는 게임 경험 △즐거움이라는 보편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게임 산업의 근간을 지탱하는 부분유료화게임(프리투플레이)의 과금 모델 근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데도 동감했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왼쪽) 박재환 나날이스튜디오 대표, (오른쪽) 정상원 넥슨 부사장
(왼쪽) 박재환 나날이스튜디오 대표, (오른쪽) 정상원 넥슨 부사장

※ 사회·정리: 김시소 기자

◆우리가 스위치와 '젤다의 전설'에 열광하는 이유

-'젤다의 전설'과 닌텐도 스위치를 해본 소감을 듣고 싶다.

▲정상원 넥슨 부사장: 우선 '젤다의 전설'은 게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게임은 대체로 간단하게 만들거나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다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살려 놨더라. 개발자들이 즐기자고 만든 게임 같았다. '이용자가 모르고 지내도 나는 행복해'라는 이런 느낌으로(웃음).

개발자 관점에서 보면 이 정도의 볼륨과 완성도를 갖추려면 방대한 작업량이 필요하다. 그리고 회사에서 개발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금도 일반 게임보다 많을 것 같다. 대단한 결정과 개발력이라고 생각한다.

▲박재환 나날이스튜디오 PD: 닌텐도 스위치는 요즘 트렌드에 맞는 게임기다. 시간과 장소 제약이 없는 가운데 구동되는 콘텐츠는 콘솔게임기 수준이다. '젤다의 전설'은 '세상을 다시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 이치를 게임으로 구현했다. 큰 예산을 투입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젤다의 전설'은 가격이 6만~7만원으로 비싼 데도 스위치보다 많이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닌텐도는 예전부터 스위치와 '젤다의 전설'이 보여 준 길을 걸었다. 외부에서 이것을 '혁신'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를 든다면.

▲정 부사장: 닌텐도가 기계를 잘 만드는 이유는 그 기계를 팔아 줄 소프트웨어(SW)의 힘이 여전히 있다. '젤다의 전설'이나 '슈퍼마리오'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항상 스타트는 잘 시킨다. 그러나 전용 소프트웨어(SW)가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금방 불길이 꺼질 수 있다. 위유(Wii U)가 그랬듯 스위치도 비슷하게 지지부진한 길을 갈 수 있다.

닌텐도가 다른 기업과 다른 점은 좀 실패해도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이다. 자기 길을 꾸준히 걷는 것이 때로는 혁신처럼 느껴진다.

'젤다의 전설'이 휴대폰으로 나오면 더 잘 팔릴 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고 좋게 말하면 '자신감' '장인정신'이다. 물론 호응해 주는 이용자가 충분하다. 시류(휴대폰용 모바일게임)를 따라가면 상업 성공이 예상되지만 그렇게 쉽게 가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잘되는 게임사는 다 하나씩 갖추고 있는 핵심 역량이다.

▲박 PD: 닌텐도는 (상업성을 위해) 게임의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 '젤다의 전설'이나 스위치를 보면 컨트롤 쾌감을 놓지 않았다. 터치 화면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부분이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놀이 개발이라는 차원에서 애플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박재환 나날이 스튜디오 대표
박재환 나날이 스튜디오 대표
정상원 넥슨 부사장
정상원 넥슨 부사장

◆사랑받는 게임과 게임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국에서 닌텐도나 '젤다의 전설'과 같이 오래 사랑받는 게임사, 게임은 잘 안 보인다. 상업 성공과는 좀 다른 이야기다.

▲정 부사장: 우리나라는 다양한 게임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가운데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좀 있다.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부족한 면이 있다. 온라인게임 산업이 커지면서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이 거기에 맞춰 진화했다. 예전에는 플랫폼 간 장벽이 뚜렷했지만 플랫폼(콘솔, 모바일, PC) 경계가 슬슬 무너지면서 이제 좀 시도하는 분위기다.

▲박 PD: 경험의 차이가 있다. 닌텐도는 콘솔 시장에서 오래 활동한 게임사다. 어떤 장르, 어떤 콘텐츠를 만들면 이용자가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경험에서 오는 확신이 있다.

▲정 부사장: 한국 게임 산업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콘텐츠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1세대 게임들이 아직까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새롭지 않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 모바일도 역할수행게임(RPG)으로 한정한다면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게임 산업의 특징인, 부분유료화(프리투플레이) 게임은 콘텐츠 완결성이나 완성도를 높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게임 안에서 유료화 모델을 고민하다 보니 상업 이슈가 콘텐츠 완성도를 앞지른다.

▲박 PD: 유료 게임인 '샐리의 법칙'을 만들기 전에 퍼블리셔의 요청으로 부분유료화 게임을 만들었다. 개발자로서 너무 힘들었다. '샐리의 법칙'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돈은 못 벌었다. 부분유료화 모델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개발자로서 분명히 괴로운 점이 있다.

▲정 부사장: 부분유료화 게임 디자인은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콘텐츠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 돈을 쓰는 것이다. 이용자들이 지칠 공산이 매우 높다. 피로가 쌓이면 산업도 어느 순간 위험해질 수 있다.

-한국 게임 산업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이대로라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넥슨은 적어도 더 이상 게임 개발에서 회사가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다. “개발하는 너희가 잘하는 것을 해봐”라고 한다. 작은 회사가 이렇게 하면 망하기 쉽다. 넥슨처럼 이익이 꾸준히 나는 회사가 리드하고 투자를 더 해야 한다.

내부에서 이런 시도를 자꾸 하고 있다. 완결성 있는 게임, 추억이 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사실 이렇게 하면 복잡한 길을 가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트리플A급 게임으로 결판을 내야 한다. 그러나 넥슨은 매출 2조원을 넘기는 것보다 '이 회사가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성과를 내긴 어렵지만 경험과 기본기가 자꾸 쌓이면 언젠가 가능할 것이다.

▲박 PD: 이용자도 좀 더 유료 게임 쪽을 고민해 줬으면 한다. 찾아보면 돈을 내고 살 만한 게임이 꽤 있다. 의식해서 이런 게임을 구매해 즐겨 주는 것은 큰 힘이 된다.

김시소 게임 전문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