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덕투일치(德投一致)'가 가져다 줄 우리의 미래

[기고]'덕투일치(德投一致)'가 가져다 줄 우리의 미래

덕후 전성시대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출발한 덕후라는 용어는 취미, 사물 등 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과거 덕후의 이미지가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고 사회성 및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었다면 최근에는 특정 분야의 방대한 정보를 쌓은 신지식인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해 많은 비용을 쓰는 이른바 '덕질' 역시 과거의 마이너 이미지에서 탈바꿈한지 오래다.

이제 젊은 세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얻고, 덕업이 일치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성공한 인생'의 주요 기준이 됐다.

문제는 모두가 취미와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취업 자체가 골라서 하기가 쉽지 않다. 급여 조건, 미래의 불확실성 등 현실에서 걸림돌이 많다. 안정된 직장이 있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 역시 큰 모험이다.

덕업일치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취미와 관심사를 살려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대안이 열리고 있다. 바로 '덕투일치' 개념이다. 덕투일치는 자신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맞춰 좋아하는 분야,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개인이 발로 뛰어 찾아가 투자했다면 지금은 제도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있다.

방식도 다양하다. 투자 대가로 제품 등을 받을 수 있는 리워드형에서 실제 해당 기업에 주주가 되는, 또는 수익을 얻는 증권형도 있다. 특히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단순한 수익 추구형 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투자 방식과 다른, 대체 투자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투자는 오로지 수익만을 얻는, 재테크 외에는 다른 목적과 이유가 없었지만 크라우드펀딩 투자는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분야를 스스로 키워 나가는 데 동참할 수 있다. 일반 대중이 창의 기업·재능·아이디어 등 성장 기업에 투자해서 트렌드와 산업을 만들고, 또 이 구조가 결국 투자자에게 좋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선순환을 이룬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은 지난해 본격 시행돼 역사는 길지 않지만 최근 애니메이션, 맥주, 수제자동차 등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투자자에게 수익을 안긴 프로젝트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실제 영화 '너의 이름은'은 외화 애니메이션 가운데 최초로 크라우드펀딩과 흥행에서 함께 성공을 거두며 수익률 80%를 기록했다. 관심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들끼리 집단 지성이 잘 발현돼 성공을 끌어낸 좋은 사례다.

지난달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J노믹스' 정책에 거는 기대감이 크다. J노믹스의 핵심은 '더불어 성장'이다. 사람에게 투자해서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살리는 '사람 중심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게 골자다. 이는 혁신 관련 투자를 기간산업이나 건설 투자로 한정시키지 않고 더 넓은 의미의 무형자산으로 범위를 확대, 창의 분야에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해 나가자는 크라우드펀딩 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사람 중심 경제 성장이 이뤄져야만 우리 사회가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다양한 창업자가 나와야 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지원할 수 있는 투자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 투자자 역시 단순히 '머니 게임'을 위한 참여자가 아니라 그 라이프스타일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팬을 기반으로 투자, 트렌드와 산업을 만들어 나가는 선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 창업자의 덕업일치, 투자자의 덕투일치를 실현시켜 주는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성공하려면 실리콘밸리로 가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미국 내 창업 투자의 많은 부분이 이곳에 집중돼 있을 정도로 '돈의 흐름'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아이디어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과 인식이 잘 형성돼 있어 벤처가 살아남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창의성, 아이디어, 사람과 같은 무형 자산에 투자할 때 좀 더 미래를 지향하는 경제 성장이 가능한 시대가 됐다. 투자를 바라보는 관점,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지금 '덕투일치(德投一致)' 시대가 가져다 줄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 she@wadiz.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