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74> 프로액티브 방식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74> 프로액티브 방식

조나라 맹장 염파의 자손 가운데 염범이란 사람이 있다. 제갈량이 나이가 많다고 지적하자 노장 황충은 자신의 건재함을 항변하면서 “나이 여든에도 한 말의 밥과 열 근의 고기를 먹었다”고 빗댄 사람이 바로 염파다. 세월이 흘러 동한 장제 무렵에 염범이 촉군 태수로 부임한다.

수도인 성도(成都)에는 공방이 많았다. 시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방은 한 번 불이 나면 걷잡을 수 없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등불 탓이었고, 이것은 밤에 일하는 탓이니 태수들은 해가 저물면 공방을 닫게 했다. 결국 몰래 불을 켰다. 그러나 두꺼운 휘장으로 감춘 탓에 정작 화재는 더 커졌다. 염범은 부임해서 사정을 살펴본 후 이 법을 폐지한다. 그 대신 방수전을 집집마다 여럿 만들게 한다. 화재는 잦아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핀란드 제약 기업인 파르모스는 1987년에 도모세단(Domosedan)을 출시한다. 도모세단은 혁신 제품이다. 동물을 묶거나 마취하지 않은 채 검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선 채로 치료를 받았다. 오피니언 리더의 인식이 중요했다. 고객의 반응을 기다리기보다 주도하기로 한다. 먼저 대학 교수와 영향력 있는 수의사를 임상 실험에 초빙한다. 수의사들은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이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경험도 쌓였다. 도모세단 인지도는 높아진다. 출시에 맞춰 이들을 초청, 만찬을 열기도 했다. 관심은 출시 즈음 최고조에 이른다.

신제품은 대개 2.5%의 혁신 수용자와 13.5%의 선도 수용자까지 쉽게 전달된다. 이들은 진보 기술이라면 기꺼이 위험과 비싼 가격을 감수한다. 그러나 나머지 고객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더디다. 선도 수용자가 포화되고, 일반 고객은 이해하지 못하면서 판매는 급감한다. 이 과정에 학자들이 캐즘(chasm)이라 부르는 큰 틈이 생긴다. 많은 기업은 이 협곡을 건너지 못한다. 임상 실험에 잠재 고객을 많이 참여시킨 도모세단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

비르기타 산드베리 핀란드 투르쿠대 교수는 당신이 혁신 기업이라면 시장을 주도하라고 말한다. 세 가지를 따져 보라고 한다. 첫째 오피니언 리더를 찾아라. 도모세단은 관련 분야 교수와 명망있는 수의사였다. 교수는 전 임상 과정, 수의사는 임상 과정에 각각 초빙했다.

둘째 이들로 초기 시장을 만들어라. 교수들은 혁신가였고, 수의사들은 선도 수용자가 됐다. 연구 과정에 참여했지만 이들을 통해 마케팅을 시작한 셈이었다. 잠재 사용자들이기도 했다. 제품이 출시될 즈음 구전 효과는 이미 긴 대기자 명단을 이루고 있었다.

셋째 시장 반응을 하는 대신 시장을 주도하라. 파르모스는 박사 학위 논문을 지원하기도 했다. 임상 결과는 논문을 통해 도모세단의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실험 조력자이면서 사전 마케팅의 좋은 통로인 셈이었다.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피부과 전문의인 캐시 필즈와 캐이티 로다는 제약사들이 여드름에 무관심한 데 놀란다. 제약사에 시장은 작고 투자 대비 수익은 불분명했다. 그러나 국소 치료제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전용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봤다. 1990년 두 의사는 첫 시제품을 출시한다. 이름은 '프로액티브'로 짓는다. 문제를 치료제 대신 전용 화장품으로 본 이들 두 사람은 텅 비어 있는 시장을 본다. 고객은 환자가 아니라 여드름을 걱정하는 잠재 고객이 된다.

성도를 거쳐간 다른 태수와 달리 염범이 눈여겨본 것은 가난한 촌민들이었다. 오죽하면 속옷하나 변변히 없다고 한탄하고 있었을까. 등불을 켜지 못한다면 생활은 나아질 방도가 없었다. 등불을 켜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해결책은 아니었다.

산드베리 교수는 혁신을 생각한다면 전향 접근을 하라고 말한다. 제품이 혁신일수록 수요에 반응하기보다 만들어 가라고 한다. 리액티브를 버리고 프로액티브를 취하라는 뜻이다. 염범의 선택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필즈와 로다가 첫 제품을 '프로액티브'로 이름지은 것도 이런 의미 아니었을까.

당시 촉군 촌민들의 노래 구절은 이랬다고 한다. “염 태수는 어찌 이제서야 왔을까. 밤에 불 밝히는 것을 막지 않으니 편히 일하게 됐네. 변변찮은 옷 한 벌 없던 우리가 이제 철마다 옷이 생겼네.” 문제 해결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