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에 집중되던 자본 시장이 사회 가치 증진 방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21층 대회의실에는 각국에서 몰려든 임팩트 투자자와 사회적기업 관계자가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동안 한국거래소 대회의실에서는 코넥스 상장기업 간담회, 우수컴플라이언스 대상 등 한국거래소가 주최하는 굵직한 행사가 주로 열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임팩트 금융과 사회적기업 대상 행사가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한국거래소뿐만 아니라 자본 시장 주요 유관 기관들의 관심이 커졌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실제 임팩트금융연구회와 한국증권학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자본 시장의 주요 유관 기관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자본시장연구원, 예탁결제원 출연의 공익재단 KSD나눔재단, 코스콤이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해선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은 “한국거래소는 사회책임지수를 산출·공표하면서 사회책임투자 문화 확산은 물론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등 임팩트 금융 취지의 간접 지원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공익 재단인 KRX행복재단을 통해 자본 시장 및 거래소의 성장 과실을 사회와 나누기 위한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자본 시장에서 임팩트 투자는 일부 학계와 공익 재단 중심으로 이뤄졌다. 자본시장연구원 주도로 자본 시장 관계자 및 임팩트 투자 관련 단체가 모인 사회적금융연구회는 지난해 초 '임팩트금융'이란 무크지를 창간했다.
당시 연구회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세계에서도 임팩트금융이 확대되고 있었지만 관심을 본격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라면서 “청와대 일자리수석실 산하에 사회적경제비서관도 신설된 만큼 임팩트 투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다음 달 발표할 벤처·창업 활성화 대책에 임팩트투자를 주요 사업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정부가 나서서 민간 자금의 임팩트 투자 유입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다.
실제 임팩트 투자 대표 사례인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의 도입은 2015년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SIB는 사회 성과 달성을 조건으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채권을 뜻한다.
2010년 영국 피터버러시에서 교도소 출소자를 대상으로 재범률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도입된 것이 최초 사례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시한 문제에 대한 개선과 방지를 목표로 민간 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사업 결과에 대한 수익 위험은 자발 투자자에게 분산하고, 투자에 대한 보상은 결과에 따라 정부가 하는 형식이다.
서울시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도입한 SIB 사업은 아동복지시설의 아동 교육에 대한 사회 성과를 보상하는 형태다. 이 사업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경계선 지능 및 경증지적장애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3년 동안 정서 회복과 기초학습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 재정 보상은 최대 성과 목표 42%를 달성했을 때 투자 원금과 최대 30%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형식이다.
경기도에서도 지난해 SIB를 활용한 '해봄프로젝트'가 시행됐다. 이 사업은 2년 동안 경기도 내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근로 의지가 있는 일반 수급자를 대상으로 참여자 20%가 취업에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부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해 민간 투자금을 유인하는 모태펀드, 성장사다리펀드의 재원 조달 방식과도 유사한 형태다. 다만 투자에 따른 성과 측정이 내부수익률이 아닌 사회 성과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다른 점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통해 도입하는 임팩트 투자 확대 방안도 SIB 형태의 자펀드 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고용노동부 예산으로 출자한 사회적기업 투자펀드 성과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업계 안팎의 평가 때문이다.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2011년 무렵부터 사회 문제 해결 대안으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라는 형태가 한때 대두됐지만 지나친 정부 주도 정책으로 말미암아 투자 기업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면서 “여타 벤처펀드 출자와 같이 단순 수익률 기준으로는 이번에도 실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민간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목소리 반영을 위해서는 법률 요건 정비와 체계화한 생태계 조성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실제 지난 5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을 중심으로 출범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는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임팩트금융추진위 관계자는 “추진위가 목표로 삼는 두 가지 목표는 첫 번째가 민간 자체의 재원 조달, 두 번째가 생태계 조성을 위한 법률 요건 마련”이라면서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지나치게 주도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혁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종래에는 모든 벤처 투자가 사회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임팩트 투자 형태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면서 “민간 벤처 투자자와 사모펀드도 임팩트 투자에 자연스레 나설 수 있도록 보수 체계 개편 등 다양한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진단했다.
이종수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은 “현재로서는 임팩트 금융을 진행하는 단체 대부분이 별도의 법률 요건 없이 자본시장법 상에 정의된 사모투자펀드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세제 혜택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임팩트 투자 확대에 기여할 수 있는 법률 요건을 우선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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