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ISO26262, 인증 산업 아냐… 근원적 안전설계 경쟁력 키워야

부품업체 A사는 유럽의 권위 있는 인증 업체로부터 ISO26262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컨설팅료 명목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시간도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러나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이 인증서를 휴지조각 취급했다. 권위에 기댄 인증 문서가 아니라, 해당 업체가 들고 온 부품의 '기능안전 경쟁력' 그 자체만을 평가했다. 인증 업체가 제공한 제품 평가보고서는 완성차 회사의 요구항목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이 회사는 수주 경쟁에서 떨어졌다.

국가기술표준원 산하 ISO26262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가는 “ISO26262는 자동차 전장분야 기능안전의 원칙과 기준을 정의한 표준 문서로 단순하게 인증서 하나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 표준에 맞춰 근원적인 안전설계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한 교수도 “ISO26262를 인증 산업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라면서 “글로벌 완성차 회사 가운데 ISO26262 인증서를 요구하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고 강조했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인증서를 들이밀면서 조건을 충족했다는 식으로 영업하는 업체를 '싫어한다'고 표현할 정도”라고 말했다.

결국 안전 설계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국제표준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 기준을 충족하는 경쟁력있는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ISO26262 연구회의 전문가는 “표준을 충족하더라도 안전 설계 메커니즘에 따라 제품별 경쟁력은 천차만별이고, 이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필요할 경우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국내 부품업계의 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증서 발급 유무 만으로 제품 안전성을 평가하는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과거 국책과제로 진행됐던 자동차 부품 개발 평가 과정에서조차 해외 업체의 인증서를 요구했다. 세금으로 해외 인증업체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나왔던 것도 바로 그래서다.

내년 초 발효되는 ISO26262 제2판에는 반도체 안전설계 가이드라인이 새롭게 포함된다. 국내 중소 중견 팹리스 반도체 업체 역시 인증 그 자체에 목을 매어서는 안 된다고 업계 전문가는 조언했다.

전문가는 “국제표준을 정확하게 학습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면서 “덩치가 제법 있는 기업이라면 전담 인력을 두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NXP, 인피니언, 르네사스 등 세계적인 자동차 반도체 회사는 국제 표준화 흐름을 파악하고 직접 표준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국내 업체는 표준 제안까진 아니더라도 흐름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미리 대비하고 적기에 시장 진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