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과학 정책 '판' 바꿀 컨트롤타워…곳곳 암초도 등장

[이슈분석]과학 정책 '판' 바꿀 컨트롤타워…곳곳 암초도 등장

문재인 정부 출범 두 달이 지나면서 과학기술계도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새 정부는 주요 공약으로 '과학기술 르네상스'를 내걸고 기초·원천 연구 확대, 행정 체계 혁신, 청년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몇몇 공약은 이미 첫발을 뗐다. 개혁 과제 일부는 부처 간, 집단 간 대립이 불가피해 정부의 실행력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학기술 정책의 '판'을 바꾸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지난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는 과학기술 독임 부처 부활도 언급했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분리해 과학기술부를 부활시키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선거 과정에서 미래부의 존치로 선회했다. 집권 이후 부처 형태를 유지한 채 정책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구상을 내놨다.

구상은 권한과 역할이 강화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부활로 구체화됐다. 정부 조직 개편은 최소화하면서 '과학 정책 일원화, 위상 강화'라는 목적을 달성하려는 취지다. 실제 새 정부의 혁신본부는 예산권을 대폭 강화, 노무현 참여정부와 차별화했다. 과학계가 10여년 동안 지적해 온 정책의 일관성과 독립성 문제도 수용했다.

과기혁신본부는 미래부 내에 설치되지만 사실상 범 정부 기획, 집행, 배분 기능을 아우른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 국가재정법 개정안 3개 '형제 법안' 모두 혁신본부 기능을 주요하게 다뤘다. 혁신본부에 정책, 평가, 예산 분야의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다.

혁신본부는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성과를 평가한다.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R&D 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권한을 가져온다.

기존에는 대형 R&D 과제가 과학기술 전담 부처(미래부)의 기술성 평가를 통과해도 기재부의 예타에 발이 묶이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관련 법안이 처리되면 R&D 분야 예타는 미래부와 혁신본부가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다.

국가 R&D 예산의 전체 지출 한도(실링)도 기재부와 미래부가 공동 설정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기재부가 실링을 설정하면 미래부가 각 부처의 R&D 예산 조정에 그쳤다. 실링 설정 단계부터 두 부처가 협의, 예산의 실효성을 높인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운영비, 인건비 조정은 미래부로 일원화한다.

범 부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본부장의 지위도 높다. 차관급이지만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등 주요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일반 차관보다 높은 처장급 보수를 받는다. 본부장직은 개방형 직위로 신설, 미래부에 외부 인사가 올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출발도 하기 전에 암초를 만났다. 기재부의 반대에 부닥쳤다. 전에 없던 혁신본부 예산권 때문이다. 기재부 입장에서 예타와 지출 한도 설정 권한은 재정 당국의 고유 권한이다. 전문성도 담보해야 한다. 기재부는 이미 국회를 상대로 한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계는 R&D 예산 독립성 확보가 첫발도 못 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예산권이 없던 참여정부 혁신본부의 한계가 되풀이될 것으로 우려했다. 정부가 기재부의 반대를 이겨낼 논리와 명분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예타는 어떤 부처에 있더라도 기존 문제가 극복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R&D 사업은 일반 재정 사업과 평가 체계가 달라야 한다는 논리다. 제품, 서비스와 직결되는 과제는 경쟁국의 기술 개발 속도를 이겨내야 하는 만큼 '급행 예타'가 필요하다. 기초·원천 연구는 기존의 비용-효과 체계에서 분석할 수 없는 잠재성을 인정해야 한다.

과학계 관계자는 “기존 예타의 문제점은 기재부, 미래부 같은 부처의 관할 문제보다 내용과 방법의 문제가 크다”면서 “시급한 개발이 필요한데도 평가에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기초·원천 연구에까지 비용-효과 잣대를 들이대는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 정책은 혁신본부 외에도 통합·일원화, 장기 지속성 확보라는 가치를 담았다. 이는 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역할 확대로 구체화됐다. 자문회의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였지만 새 정부에서는 과학 정책의 최종 심의·의결 기구로 격상된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와 과학기술전략회의의 기능을 흡수한다. 대통령 의장 기구인 만큼 결정의 위상이 높아진다.

자문회의 역시 절차 상의 쟁점을 내포, 앞으로 조율이 필요하다. 자문회의는 고유 법률이 있는 헌법기구다. 법률 상 심의·의결 기능이 명시되지 않았다. 자문기구 역할에서 벗어나려면 재논의와 법 개정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계는 절충안으로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과학기술혁신위원회'를 별도로 설치, 역할을 구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